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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반면교사
2023-07-27 06:00:00 2023-07-27 06:00:00
여기저기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이하 ‘전기본’)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올해 말까지 골자를 정한다고 한다. 11차 전기본은 “원전의 귀환”으로 방향이 잡힌 듯 하다. 대형 신규 원전은 더 이상 없다던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180도 선회해서, 최대한 빨리 대형 신규 원전을 추가 건설하고, SMR도 필요하다는 현 정부의 의중을 명문화하여 11차 전기본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풀어가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맞지 않으니 이제라도 바꾸어야 한다는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언론 매체와 SNS에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과학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제시된 가설/이론이 실험을 통해 검증된 이후에는, 그 과학 가설/이론을 통해 확실하게 특정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에다. 문제에 대한 조치가 효과를 거두려면, 문제의 원인 분석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 요금이 2배 오른게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려고 하면, 원가 상승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해야 전기 요금이 안정 될 것이다. 전력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면, 가장 배출량이 많은 발전원을 최대한 빨리 철거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원인 분석과 핵심 대책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전 정부가 원인 분석부터 틀린 정책을 무모하게 밀어 붙이면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전력망도 없는데 과속으로’, ‘폐기물 처리는 고려하지 않고’, ‘특정 카르텔을 위해’, ‘전기 요금 인상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이 다 맞다면, 이를 교훈 삼아 현 정부는 11차 전기본 수립을 시작으로 신규 대형 원자력 발전소와 SMR 확대 정책을 어떻게 펼쳐가야 할 것인가?
 
비판한 그대로 주의해서 실행하면 될 것이다. 우선 현행 법령을 준수해서 부지 확보와 후보지 선정을 진행해야 할 것이고, 점증하는 기후 위기와 이상 날씨 변동에 대응해서 엄격한 안전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100년래 최악의 폭우, 폭염, 한파가 빈번해진 세상에서 10000년의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기상 이벤트에도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원전 설계를 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을 집어 삼켰던 쓰나미도 과거 1000년 동안 2번 이상 발생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설계자들은 이로 인한 위험성을 가볍게 여겼었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서 주민 동의를 사전에 구해야 할 것이며, 급하다고 해서 지원금이나 보상 패키지로 지역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20년 후에는 태양광 패널 폐기물이 수십만톤 나올 거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신규 원전은 최소 60년은 사용해야 하나 폐기물 문제는 제자리다.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의 재활용/재처리 시설이나 영구 처리장은 부지 선정 착수도 못했다. 임시 보관소도 10년 후면 꽉 차는 상황에서 방폐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신규 원전 건설 논의보다 우선 필요하다. 또한 대형 원전을 동해, 삼척 등 동해안 지역에 신규 건설한다면, 충분한 전력 계통 증설과 같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신규 대형 화력 발전소와 건설 중인 원전들로 인해 동해안-수도권 계통은 여유가 없는데 이 지역에 대형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것은 전기사업 허가의 기본 원칙을 정부가 스스로 허무는 선례가 될 수 있다. 한전의 계통 증설 계획이 지난 10년간 계획의 10%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노후 석탄 발전소를 재활용하는 등 계통 문제를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는 대안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전 정부가 특정 지역, 특정 단체, 외국 기업들을 위해 혈세를 퍼부었다는 비판이 유효하다면, 국가와 독점 공기업이 토지 확보, 인허가 처리, 주민 보상은 물론이고 정기 저리 자금을 투입해주고, 세금도 별로 내지 않는 원전의 신규 증설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SMP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전력 시장 체계에서는 국제 유가와 LNG 가격 변동이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전력 시장 구조가 유지된다면 원전 비중이 대폭 늘어나더라도 전기 요금은 언제라도 올라갈 수 있다. 전력 시장을 구조적으로 개편하거나 향후의 원전 증설, 계통 투자 등을 고려해서, 장기적으로 전기 요금을 조금씩 올려야한 함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무릇 훈수 두기는 쉬워도 직접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해 많은 교훈을 얻었으니, 11차 전기본에서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과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원전 증설을 포함한 여러 정책들이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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