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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공포 일으키면 '스토킹'…대법원 첫 판결 의미
'부재중 전화' 스토킹으로 인정…스토킹처벌법의 중요 사례 될 듯
피해자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수 있어… 895차례 전화 남성도 벌금형 선고
2023-06-05 06:00:10 2023-06-05 06:00:10
 
 
[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상대방 전화에 부재중전화를 반복적으로 남기는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피해자들이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어도 계속 울려대는 전화기에 훨씬 큰 공포를 느껴왔지만 법원은 맥락을 배제한 채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던 겁니다.
 
뒤늦게라도 부재중전화를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스토킹 행위가 작년에 일어난 신당동 살인사건 처럼 정도가 심각해져 폭행·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스토킹처벌법의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입니다.
 
상대방 전화에 부재중전화를 반복적으로 남기는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사진=뉴시스)
 
'부재중 전화' 스토킹으로 인정…스토킹처벌법의 중요 사례 될 듯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실제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어도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기록을 남기는 것도 스토킹 행위로 보고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3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의 상고심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부산지법에 돌려보냈습니다.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와 돈 문제로 다툰 뒤 휴대전화 번호가 차단당하자 다른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메시지를 9차례 보내고 부재중 전화를 28차례 거는 등 총 29차례 전화한 혐의 입니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1심은 가해자의 반복된 문자와 전화를 모두 스토킹으로 판단했지만 2심에서 부재중전화는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본겁니다. 이는 2005년 대법원 판례에서 '전화기 벨소리'의 경우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음향'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전화,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하여 글·말·음향 등을 도달하게 함으로써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부재중전화 표시의 경우 휴대전화 기능일뿐 말이나 음향이 피해자에게 직접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던 겁니다. 
 
상대방 전화에 부재중전화를 반복적으로 남기는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사진=뉴시스)
 
피해자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수 있어… 895차례 전화 남성도 벌금형 선고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에 음향, 글 등을 '도달'하게 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음향이나 글의 내용이 꼭 피해자에게 불안이나 공포를 유발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피해자 휴대전화에 벨소리·진동음이 울리고, '부재중 전화' 문구가 표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므로 가해자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에서 배제하는 건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며 "피고인이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대법원 판단 이후 '공포심 유발'이 스토킹이라는 판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광주지법 형사 10단독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성에 새벽 동안 895차례 전화를 한 20대 남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스토킹행위자 처벌강화와 피해자 보호강화 등을 보완하는 내용의 스토킹처벌법 개정안도 추진되고 있다"며 "부재중전화 스토킹 범죄 여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이번 대법원 첫 판결에 따라 판사 성향에 따른 엇갈린 판결이 비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권순욱 미디어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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