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메모리 반도체 감산 방침을 밝혔습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1분기 영업이익이 96%가량 쪼그라드는 '어닝 쇼크'(실적악화)를 기록한 데 따른 전격적인 결정입니다.
특히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수조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면서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반도체 감산을 공식 인정한 것이어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반도체 불황의 골이 예상보다 깊고 대규모 적자에 직면하자 기존 기조에서 급선회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진정되고 업황 반등도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어닝쇼크 반도체 업황 악화 탓… 해법은 '감산'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의 14조1214억원보다 95.75% 급감한 6000억원에 그쳤습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로 주저앉은 것은 2009년 1분기 5900억원을 기록한 이후 14년 만에 처음입니다. 매출은 63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고 지난 7일 잠정 공시했습니다.
영업이익 악화의 배경으로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업황 악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메모리 업황의 직격탄을 맞아 DS부문에서만 4조원 가량을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D램과 낸드 모두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도 주문량 감소에 따른 가동률 하락에 적자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불경기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 D램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분석인데요. 반도체 수요 둔화에 따른 출하 부진과 가격 하락이 시장의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진단입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업황 부진 타개를 위한 해법은 결국 '감산'이라는 게 중론인데요. 삼성전자도 잠정 실적을 공시하면서 설명 자료를 통해 감산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진행 중인 미래를 위한 라인 운영 최적화 및 엔지니어링 런 비중 확대 외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난이도가 높은 선단 공정과 DDR5·LPDDR5 전환 등에 따른 생산 비트 그로스(bit growth·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제약을 대비해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으나,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판단입니다.
구체적인 감산 규모와 시기 등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DDR4를 중심으로 감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없다'던 삼성전자, 감산 공식화로 실적 향상 전망
그간 삼성전자는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거나 라인 가동을 멈춰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이 악화하면서 경쟁 업체들이 잇달아 감산을 발표한 것과는 정반대 행보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경쟁사 감산 효과가 나타나는 올 하반기까지 손실을 버티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다만 삼성전자는 설비 재배치 등 생산라인 최적화와 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한 '자연적인 감산'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급격히 악화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분위기에 이번에 삼성전자는 감산을 공식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업계에선 자연적 감산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고 보고 있는데요.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삼성전자는 상당한 규모로 감산을 진행 중"이라며 "일부 테스트 및 부품 업체에 의하면 1분기 삼성전자에서 수주한 물량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시장에선 그간 업계 1위인 삼성전자가 메모리 감산에 나서지 않으면 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해왔습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이를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하면서 "3명(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범용 제품을 가지고 고객은 플레이하는 것이고, 계속 게임을 하면 다운사이클(하강 국면)에서 공급 초과 측면에서는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같은 언급은 삼성전자의 감산 움직임을 에둘러 촉구하는 의미로 풀이됐습니다.
이달 말 확정 실적 발표가 이뤄지는 컨퍼런스콜에서도 감산 관련 추가 설명이 언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D램 생산이 감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하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1분기에도 재고가 증가했을 것"이라며 "추가로 보수적인 설비투자(캐파) 운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장 악화로 감산이 본격화되면 향후 실적은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삼성전자는 "단기 생산 계획은 하향 조정했으나 중장기적으로 견조한 수요가 전망된다"며 "필수 클린룸 확보를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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