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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과잉 억제와 안보 딜레마의 늪
2023-03-23 06:00:00 2023-03-23 06:00:00
한미 연합훈련이 한창이다. ‘자유의 방패 ’이름으로 실시되는 금번 훈련은 연대급 이상 대규모로 5년 만에 재개된 것으로서 한미의 최첨단 무기체계와 전략자산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연합상륙훈련인 ‘쌍용 훈련’에는 미군의 F-35B 스텔스 이착륙기 등을 탑재한 대형 강습 상륙함이 참여할 예정이고, 대북 참수 작전 성격의 연합특수작전 훈련 ‘티크 나이프(Teak Knife)’에는 미 공군의 최신예 특수전 항공기 AC-130J가 최초로 한반도에 전개된다.
 
이 외에도 지난 3일에는 B-1B 전략폭격기와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리퍼(MQ-9) 무인공격기가 한반도에 전개되어 한국 공군의 F-15K, KF-16 전투기와 연합 공중훈련을 벌인 바 있다. 리퍼는 2020년 미군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할 때 사용된 전력이다. 특히 금번 훈련은 종전과 달리 방어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반격과 북한 안정화 작전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어적 차원보다는 대북 전면전이 발발했을 때 신속하고 압도적인 반격 작전 수행 역량을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북한은 예상대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인 3월 9일 근거리 탄도미사일(CRBM) 6발을 발사했고, 12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개최하여 “미국과 남조선의 전쟁 도발 책동에 대처하기 위한 중대한 실천적 조치들이 결정되었다"고 응수했다.
 
실천적 조치들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곧이어 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SLCM) 2기 발사, 백령도 인근에서 단거리 미사일(SRBM) 2기 발사 등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낮은 고도로 날며 레이더 탐지를 회피하는 순항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며, 백령도와 불과 10km 떨어진 지역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처음이다. “다양한 공간에서의 핵전쟁 억제 수단들의 경상적 가동 태세”를 강조한 북한의 발언대로 원점 타격을 피하고 자신들의 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 질주, 한미의 강력한 대응이 맞물려 한반도에는 무력 시위 경쟁과 억제력 대결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 상황이다. 남북한 모두 억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이 상대에게는 위협적이고 강경 대응의 명분과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밝힌 핵 독트린은 전술핵의 실전 사용 능력을 통해 한미의 재래식 전력의 우위를 상쇄하려는 억제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의 “작전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협일 수 밖에 없다. 한편, 한미 연합훈련은 우리 입장에서는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확장억제 실효성 담보 차원의 노력이다. 그러나 상륙 훈련, 북한 지도부 제거의 특수작전 훈련, 대규모 전략자산 전개 등은 북한을 자극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당분간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곤란해 보인다. 북한은 대미, 대남 관계 개선보다는 자체 핵 억제력과 자력갱생의 길을 선택했고, 이에 대응하는 한미의 대북 억제 노력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을 최대한 낮춰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없애고 군비경쟁의 압력을 완화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억제는 필요하지만, 위기 불안정과 군비경쟁의 불안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억제의 성격과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미 연합훈련은 그 규모와 성격이 과도하고 도발적으로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더 많은 전략폭격기, 더 공세적 훈련이 있어야 한반도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6차례의 핵실험, 수많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쳐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억제력을 확보했으므로 더 이상의 핵 무력 고도화의 노골적 추진은 큰 전략적 이득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을 향한 완벽한 확증 보복 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데, 끊임없는 비용과 리스크만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유용한 군사적 옵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이미 쌍방 억제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 더 이상의 억제력 추구는 위험하며 불필요한 자원 낭비라는 각성이 남북한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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