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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35)탁발 마라톤
2023-01-04 10:58:43 2023-01-04 10:58:43
태양이 지평선에 떠오를 때면 태국의 아침은 맨발의 스님들의 탁발로 시작한다. 두 손을 합장하며 복을 비는 마음도, 축원하는 마음도 나눔으로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저 멀리 떠다니는 구름처럼, 인간의 행운과 불운은 떠다니는 구름과도 같아 결국은 바람 따라 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행운을 비는 사람도 축원하는 사람도 자못 엄숙하다. 탁발한 음식은 더 가난한 사람과 나눈다. 떠돌이 개, 고양이도 가난한 중생이다. 그래서 태국의 사원에는 유난히 팔자 좋은 개, 고양이가 눈에 많이 띈다.
 
태국을 가리켜 흔히 ‘미소의 나라’라 부른다. 만나는 사람 누구나 합장을 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로 인사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무장해제 되게 마련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는데 태국인들이 밝은 미소와 여유는 풍부한 먹거리를 바탕으로 생겨난 삶의 풍요로움과 관계가 있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 풍부한 일조량은 태국에 내려진 하늘의 축복이다. 태국은 예로부터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열대과일과 향신료가 풍부한 나라이다.
 
길 위를 달리다 큰 사원이 나타나면 나는 잠시 짬을 내어 법당을 기웃거려본다. 태국인들의 미소가 바로 이 불상들의 미소와 묘하게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불교를 신봉하며 살다가 부처를 닮아버린 것 같다. 그렇다. 내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달리며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가 붓다의 미소이면서 바로 태국인들의 미소였다. 부드러운 미소와 유연함으로 태국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언제나 타민족에게 침탈을 당하는 나라나 민족은 백성들에게 지지를 잃은 자(者)가 권자에 앉아있을 때이다. 민심을 잃은 권좌를 꿰차고 앉아 권력을 휘두를 때 그때가 나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타이 족은 앙코르 왕조가 높은 세금과 노역으로 민심을 잃자 그들로부터 독립하여 수코타이 왕국을 세웠다. 주변 여러 나라들에 비해 그들만의 국가를 세운 것은 비교적 늦은 13세기에 들어서였다. 이 수코타이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가 태국의 문화의 근간을 되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은 국가이고, 근현대에 내전에나 전쟁을 치루지 않아서 유적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볼거리가 많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미소 속에 사대사상이나 식민근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함이 있다.
 
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은 쭐랄롱꼰(라마 5세) 대왕이다. 라마 5세 왕은 중요한 시기에 태국을 다스리며 선정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었고, 절대 왕정을 포기하고, 노비제도를 폐지하는 등 개혁정책을 능동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외국이 침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는 그의 부왕 라마 4세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외국인 교사를 고용해 아들 라마 5세가 근대적 서구 문명에 접하게 하였다. 이 이야기가 영화가 율 부리너 주연의 ‘왕과 나’ 라고 하는 영화의 줄거리이다.
 
영화를 어렸을 때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다시 보니까 서양 우월주의가 고스란히 녹아져있어서 밸이 뒤틀린다. 영국인 가정교사 안나에게 태국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인 왕이 거의 휘둘리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 서양과 동양을 은연 중 문명과 미개로 대비시키는 것 등이 그렇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나 정작 태국에서는 상영금지가 된 것이 이해가 된다.
 
서구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왕정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 몽꿋 왕이 개혁적이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그의 아들 쭐라롱콘 왕이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외교 덕분에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고 왕국의 주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기실 몽꿋 왕은 서구 열강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서구의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무한한‘존경과 사랑’받았다.
 
라마 5세는 태국을 집어 삼키려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영국에게 당시에는 태국 땅 이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근방에 있는 시엠립을 떼어주는 굴욕을 감수하고 태국을 지켜냈다.
 
태국의 대표적 요리이면서 세계 3대 수프로 꼽히는 똠양꿍은 그때 개방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여러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예전에 없던 다양한 음식문화가 태국 음식에 녹아들었다. 똠양꿍의 매력은 맛의 조화이다. 똠양꿍은 맵고, 시고, 달고, 짠맛이 다 들어있으면서 각각의 맛이 살아있으되 다른 맛을 배척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개성과 융합의 맛이다. 우리나라의 비빔밥이 바로 개성과 융합의 맛이다. 마치 다른 악기들이 각각의 소리를 내면서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 같은 것이다. 그 맛이 우리 통일의 정신이다. ‘개성과 융합’의 통일이 우리가 지향할 통일의 목표이다.
 
서구의 진출은 약탈을 교묘하게 인권과 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자연스럽게 동남아 시민들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식민지화는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짜끄리 왕조는 근대의 이념의 물결까지 막기에는 힘겨웠다. 1932년부터 태국 인민당의 주도로 입헌군주제 개혁이 진행됐다. 그러나 절대왕정의 태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던 군부 엘리트는 분열했다. 태국 왕실은 정당성 없는 군부 쿠데타를 승인함으로써 여전히 통치하는 왜곡된 입헌군주의 길을 걸었다. 잦은 쿠데타로 정정은 불안해도 왕실은 유지되고 있다.
 
영겁의 세월을 거쳐 온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이 지금도 빛을 일지 않았듯이 나의 열정도 빛을 잃지 않았으면! 탁발에 나선 스님에게 공양하듯이 한 소녀가 보통 태국인들이 가진 미소보다도 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바나나 한 손과 큰 물병 두 개를 공손하게 땀을 흘리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공양하고 쑥스러운 듯 달아난다.
 
'열린 마음',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국을 여행하면 태국은 언제나 미소로 당신에게 만족을 선사한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가 87일차인 지난달 26일 태국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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