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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책임은 피해갈 수 없다
2022-11-30 06:00:00 2022-11-30 06:00:00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가 지난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가 내년 3월25일까지여서 아직 여유가 있지만 갑자기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하 대표가 앞당겨 물러선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계열사 여러 곳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홈쇼핑, 호텔롯데 등의 계열사들이 유상증자 참여와 자금대여 등의 방식으로 롯데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롯데물산은 보증을 서 주는 방식으로 롯데건설을 도와줬다.
 
그러다 보니 이들 계열사에 부담이 전염됐다. 계열사들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금을 보충해야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재가 번져나가는 것이다.
 
가장 딱하게 된 곳은 롯데케미칼이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 2조7000억원을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롯데건설 생존자금까지 대여해 줬다. 석유화학 시황이 좋지 않은데 돈 쓸 곳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롯데케미칼은 1조1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롯데건설의 자금 사정 안정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우발 채무가 적지 않은 데다 부동산 시황이 나빠져 먹구름은 여전히 짙다.
 
나아가서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한꺼번에 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당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 롯데지주, 롯데렌탈, 롯데캐피탈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롯데건설의 악재가 꼬리를 물고 계열사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니 하석주 대표이사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LG생활건강을 18년간 이끌었던 차석용 부회장도 물러난다. 그 대신 이정애 부사장이 맡기로 했다. LG그룹의 첫 여성 사장이라고 한다. LG생활건강은 차 부회장이 지휘하는 동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렇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시장이 위축되자 제동이 걸렸다. 그러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김종현 첫 대표이사 사장이 경질됐다. 김 전 사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2020년 12월1일 엘지화학으로부터 분리독립 하면서 사장을 맡았지만, 끊임없이 품질 논란에 시달렸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전기차 배터리가 곳곳에서 타버리는 바람에 여러 차례 리콜해야 했다. 이로 인해 물어내야 했던 품질 비용만도 수천억원을 헤아린다. 증권시장 상장도 애초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졌다. 그러니 최고경영책임자인 김종현 전 사장이 계속 자리를 지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에는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가 대규모 ‘먹통’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에는 카카오 공동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도 먹튀 논란으로 말미암아 자리를 내놨다.
 
이렇듯 기업경영에서 큰 문제가 일어나거나 경영실적이 현저히 악화할 경우 최고경영자들은 거의 어김없이 자리를 내놨다. 이들 최고경영자의 책임 의식이 각별히 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해당 재벌 오너는 물론이고, 투자자나 채권자, 그리고 사원들의 따가운 시선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책임자들에게는 그런 책임 의식과 수오지심이 없는 것 같다. 지난달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윤희근 경찰청장 등 고위 지휘자 가운데 아무도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고 굳건히 버틴다.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도 그대로 두고 있다. 참사 희생자만 억울한 형국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피하려 할수록 책임 논란은 더욱 가열된다. 물러나야 할 상황인데도 깨끗이 물러나지 않으면 스스로 추해 보일 뿐이다. 조직에도 부담만 준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뜨거운 숯덩이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습해 보겠다며 버티는 것은 비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수습은 후임자가 차분하게 하면 된다. 윤 대통령과 행안부장관 및 경찰청장 등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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