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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핵심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야
2022-11-16 06:00:00 2022-11-16 06:00:00
강원도의 레고랜드 보증채무 불이행으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월23일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는 등의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10일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1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대책을 서둘러 연이어 내놓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단기자금 시장이 갈수록 꼬이는 듯하다. 단기자금시장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기업어음(CP) 금리가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신용등급 A1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전 일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02%에 마감했다.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2009년 1월14일(5.17%) 이후 13년10개월 만에 5.0%대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더니 다음날 5.09%, 11일 5.15%, 14일 5.18%로 날마다 올랐다. 지난 9월21일(3.13%) 이후 38거래일 연속 상승이다.
 
이 같은 상승세는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까닭에 기업어음으로 방향을 트는 기업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기업까지 나서고 있다.
 
재계 2위 SK는 지난 10일 총 2000억원 규모의 장기 기업어음을 발행했다. 청약률 100%를 기록했으니 ‘완판’이다.
 
3년 만기 CP의 금리는 5.651%, 5년 만기 5.745%로 확정됐다. 지난 1일 최초 증권신고서가 제출됐을 때보다 다소 올랐다. 단기자금 시장이 불안하고 상승압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지금의 자금시장 경색이 주로 부동산 대출 PF가 많은 소형증권사 중심으로 빚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SK의 경우로 미뤄볼 때 대기업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SK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기업어음 발행에 성공했기에 ‘행복’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최근 연 64%의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진 한진공영 등과 비교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또 뉴시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진에어, 코리아세븐, 롯데지알에스, SK렌터카 이마트24, 등 대기업 계열들은 최근 금리 연 6∼7%의 사모 사채를 발행했다. 이런 대기업들에 비해서도 분명 행복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다른 대기업들도 너도나도 기업어음 발행에 나서며 시장 불안을 가중하는 데 앞장서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면 기업어음 금리가 더 오르고, 중견 중소기업들은 회사채나 기업어음 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시중금리를 급등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이 기업어음이었다. 일부 종금사를 비롯한 부실 금융사와 대기업들이 급전 조달을 위해 고금리 기업어음을 써먹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어음 금리는 한때 연 30%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말하자면 고금리 블랙홀이었다.
 
지금이야 물론 그때와는 다르다. 기업의 재무 상태가 그때와는 비할 바 없이 양호한 편이다. 그렇지만 자금시장 경색으로 말미암아 당국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런 경험은 코로나19 창궐 초기 단계인 2020년에도 겪었다.
 
재작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금시장 경색 해소를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나서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기업까지 시중금리 상승을 ‘선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재벌들의 고금리 기업어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억제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벌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SK의 경우 굳이 장기 기업어음까지 발행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종의 이유로 자금 사정이 핍박받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하게 된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공장건설을 위해 기업어음을 많이 발행했다가 불행해진 재벌의 경우가 머릿속을 스친다. 그래서 베토벤처럼 “꼭 그래야 했나요?”라고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부당국도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대책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자금시장 불안의 핵심 고리로 꼽히는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시장 경색이 스멀스멀 번지며 금융권 전체와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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