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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100일②)처벌 미비…소송으로 시간끌기
불시 점검서 204건 적발…법 시행 후 기소송치 1건 불과
영업정지 무용지물…HDC현산·태영건설, 소송·과징금 대체
2022-05-02 07:00:00 2022-05-02 07:00:00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열린 '2022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등 참석자들이 산재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헌화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00일을 맞았지만 안전 불감증은 여전한 모습이다. 올해 1분기(1~3월) 건설현장에서는 55명이 산재로 사망한 가운데 현재까지 중대 재해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전무해 실효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사고 발생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관련 규정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법 위반에 대한 법리적, 실무적 해석을 놓고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특히 법 시행 이전에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건설사의 경우 소송 등으로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며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안전관리원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사고사망자는 총 55명으로 집계됐다. HDC(012630)산업개발, 현대건설(000720), DL이앤씨(375500), 한화건설 등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4명으로 직전분기(17명) 대비 소폭 줄었지만, 지난 1월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해예방 효과는 크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달 4일부터 약 한달 간 작년 4분기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의 현장을 불시 점검한 결과 DL이앤씨·쌍용건설·삼성물산(028260)·신동아건설 등에서 총 204건의 건설기술 진흥법 위반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의 대부분이 현지시정 등 미비한 수준에 그쳤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고 또한 현재 근로자 16명의 급성 중독이 발생한 두성산업 1건에 불과한 상태다. 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 1월29일 발생해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의 경우 석 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최근에서야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모호한 조항과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인해 산업 현장의 유의미한 변화보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표=뉴스토마토)
 
영업정지 처분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중대재해 사고와 관련해 입찰참여제한이나 영업정지와 같은 중징계를 받더라도 법원에 처분취소 소송과 집행정지가처분 등을 신청해 ‘시간 끌기’를 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영업정지 효력 발생 시점에 기약이 없어 건설사 입장에서는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을 따내는 등 신규 수주를 할 수 있다.
 
일례로 태영건설(009410)의 경우 지난 2017년 시공을 맡았던 경기 김포시 신축공사장에서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 2명이 질식사하는 사고와 관련해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법원에 영업정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약 5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야 1심 판결에서 패소하며 처분을 수용했다. 그 사이 태영건설은 신규 수주에 나서며 올해 3월 기준 약 7500억원을 수주했다.
 
광주 학동 재개발사업 건물 붕괴사고와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참사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의 역시 집행정지 가처분 행정소송과 과징금 대체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하수급인 관리의무 불이행'으로 내린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철회하고, HDC현산에 4억623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처분 대상자가 요청하는 경우 영업정지를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정지 조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 참사 시민대책위는 성명서를 통해 “서울시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산업개발의 과징금 부과 요구에 응한 것은 봐주기로밖에 볼 수 없다”라며 “불법 공사가 자리할 수 없도록 하루 빨리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강화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라고 규탄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측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노동자가 사망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산재사망 처벌에서 대표이사를 지키기 위해 대형 로펌에 수억을 쏟아 부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개악과 무력화하는 것을 중단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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