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삶의 시선 깊어진 포크록, ‘이랑이 나타났다’
현실 절묘하게 비튼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작은 외침으로 사회 변화될 수 있다면 좋을 것”
입력 : 2021-09-15 15:57:49 수정 : 2021-09-15 15:57:4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이랑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사진/유어썸머
 
‘마녀가 .. /폭도가 .. /늑대가 .. /이단이 나타났다!’
 
서늘한 현의 울림 뒤 낮게 깔리는 나레이션과 거친 외침. 귀곡성으로 뒤덮인 낯선 산장에 온듯하다.
 
“저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걸 외치는데 사회가 마녀나 늑대, 이단이라고 칭하는 것 같을 때 분노가 느껴져요.”
 
최근 발매된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현실을 절묘하게 비튼 한편의 금서(禁書) 같다. 거칠다. 날카롭다. 머리털이 쭈뼛 선다. 금단의 열매는 늘 유혹적인 법이다. 
 
아찔하게 산뜻한 멜로디, 그러나 야성적인 목소리, 무거운 톤의 가사들은 기묘한 이율배반을 이룬다. 불타고 부서져 내리는 앨범 속지 서울 그림이 평면에서 입체로, ‘화마(火魔)’로 솟구칠 것만 같다.
 
“권력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몰래 전달되던 혁명서, 혁명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망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랑이 말했다. 
 
싱어송라이터 이랑. 사진/유어썸머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던 전작들과 달리 신보는 대개 타자의 삶으로 향하는 전이(轉移)다.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의 화사한 선율이 첼로의 묵직한 현울림에 겹쳐지다, 입체적인 합창 세례들로 번져갈 때(‘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 코러스 버전) 그런다. 아르페지오의 따스한 울림이 이는 곡 ‘잘 듣고 있어요’에서 ‘잘듣고 있나요’ 나직이 질문할 때 이랑의 읊조리는 음성은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며 외부 세계에 가 닿는다. 전작보다 삶과 시선의 겹이 깊어진 모던 포크록.
 
‘한국에서 태어난 게 어떤 의미인가’ 묻고(‘신의 놀이’), 죽음과 삶의 대답을 ‘하-하-하-하’ 웃음소리 같은 생명력으로 갈음하던(‘호호호’) 그는 이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두른 이들과 어깨동무를 나란히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서는 녹록치 않은 사회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거든요. 전작까지 개인이 사회와 만나 ‘흑화’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고 외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이랑. 사진/유어썸머
 
삶이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죽을 수 있는 사회’라는 사실은 늘 암담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매번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하는 이 사회에서, 모두가 일순간 공평하게 사라지는 ‘공(空)의 세계’를 상상할 때(‘환란의 세대’) 이랑의 목소리는 거침없는 횃불이 되고 만다. 
 
“다양한 재난 상황에 어울릴 곡인데요. 나는 물론이고 주변인들까지 힘들다면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치고 싶었어요. 작은 외침으로라도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면 좋을 거고요, 코로나도 그렇고 기후문제도 그렇고 인간의 연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행진가 같은 드럼의 리듬과 처연한 첼로의 선율이 교차하며 읊조리는 ‘빵을 먹었어’는 실존주의에 관한 곡. “어느 날 문득 ‘빵’을 사오다가 왜 이 빵은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왔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얘도 분명 사라질 수 있었을텐데... 어떻게 보면 없어진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큰일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우리는 연대 책임으로 삶의 의무를 다해야할 뿐이죠.”
 
중간에 위치한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는 앨범 서사 전체를 마무리하는 노래다. “머리가 복잡한 세상에선 잠이 잘 안오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고. 앨범 결말이 자장가가 됐으면 했어요.”
 
싱어송라이터 이랑. 사진/유어썸머
 
역병의 시대 공연이 소멸하다시피 했지만 부단히 음악이든, 글이든 세상에 내놓고 있다. 모쪼록 쓸모가 있다는 건 기쁘다는 자각이 들었다. 지난해 에세이집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를 펴냈다. 정당한 대가 없이 공연 섭외를 하려는 인디 시장 등에 일갈한다. 그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수상(2집 수록곡 ‘신의 놀이’) 당시에도 저작권자에게 수익이 적게 돌아가는 국내 음원 유통 구조를 비판한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로 화제에 선 바 있다.
 
이랑은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는) 두 번 다시 초대받지 않을 것이다 각오하고 한 행동”이라며 “평생 한번 받을 상이라면 주어진 시간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특정 공간에 빗대면 어디가 좋을지 물었다.
 
“듣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게 저의 목적이랄까요.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외치면서, 행진을 하거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 같아요. 넓은 거리면 좋겠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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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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