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제'가 불러올 연상
입력 : 2021-07-27 06:00:00 수정 : 2021-07-27 06:00:00
이강윤 한국여론조사연구소 소장
"백제 : 서기 전 18년에 부여족 계통인 온조 집단에 의해 현재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4세기 중반에는 북으로 황해도에서부터 경기·충청·전라도 일대를 영역으로 뒀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백제사를 수도 변천 측면에서 보면 한성 도읍기(현 서울), 웅진 도읍기(현 공주), 사비 도읍기(현 부여)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좀 길지만 인용한 이유는 '백제'가 염천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재명 예비후보가 전남 출신인 이낙연 예비후보에게 작년 여름 건넨 덕담이 소환됐다. 이낙연 후보는 "지역감정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라 지적했고, 이재명 후보는 "전체 맥락을 보면 선의가 왜곡된 것은 물론이고, 이낙연 후보 측에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덧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각각 호남과 영남 출신인 정세균, 김두관 예비후보까지 가세해 일견 지역대항전 양상이 돼버렸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팩트로 돌아가자. 이런 논란에는 가공없는 원문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앙일보 인터뷰 당시 녹음파일과 발언 전문을 공개했다. 거기서 인용한다.
 
"기자 / 민주당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출마하셨는데 그 중에서 지사님이 왜 필승 카드라 생각하시는지?
 
이 지사 / 제가 작년에 사실 이거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이낙연 당 대표님이 경기도에 오셨을 때, 대선 이기시면 좋겠다, 이 말씀 드렸어요.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소위 백제, 호남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예가 한 번도 없어요. 단 한 번도. 김대중 대통령께서 처음으로 성공했는데 절반의 성공이었죠. 충청하고 손을 잡았잖아요. (중략) 근데 그 후로 지지율이 많이 바뀌어 버린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 됐고, 진짜 현실적으로 이길 카드가 뭐냐, 봤을 때 제일 중요한 게 확장력이죠. 전국에서 골고루 득표받을 수 있는 후보. 그것도 좀 많이 받을 수 있는 게 저라는 생각이 일단 들었고. 제가 보기에는 신뢰, 빈말하지 않는다, 유능하다, 막 조그만한 도구를 가지고도 큰 성과를 내더라. 신뢰와 실적, 유능함, 그 다음에 청렴함. (중략) 이 세 가지 측면 때문에 전국에서 고루 지지를 받는 거고. 그리고 지역적 확장력도 있는 거고. 그게 합치니까 가장 본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 라는 판단이 든거죠."
 
필자에게 허용된 원고 분량을 거의 다 잡아먹어가며 매우 길게 인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원문에서 확인되다시피, 이재명 후보는 "백제"와 "지역적 확장력'이라는 표현을 했다. 주지하다시피 언어에는 '연상작용'이 있다. 이재명 후보의 전체적 발언 취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그 두 표현이 같이 사용됐을 때 듣는 사람이 어떤 연상을 하게 되리라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백제라는 단어는 단순히 '과거 한반도에 존재했던 어느 국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함축적 의미는 불행히도 특정 지역 차별과 직결된다. "백제"라 하면 거의 다 신라와 고구려를 함께 연상하게 된다. 백제에 뒤이어 "지역적 확장력"이라는 표현을 했다. 이재명 후보로서는 비유였겠지만, '지역적 확장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 백제는, 건드려서는 안 될 지역감정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했다는 것 역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대선 후보를 놓고 경선중인 와중에 그런 표현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각 캠프에서는, 지금 당장은, 누가 잘못했느냐를 가려 따지는 게 중요해보일 것이다. 민주당 후보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의미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어느 예비후보건 '시대 정신'을 얘기한다. 공정과 인권, 복지와 4차산업혁명 못지 않게 중요한 시대정신은, 과거 폐단과 질곡을 구조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말이라는 소통 수단은 '의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개념 정의를 빌지 않더라도, 말은 곧 평소 사고체계의 반영이다. 자신의 언설이 불러올 연상작용과 파장까지를 고려해 신중을 기하는 것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기본 덕목이자 의무가 아닐까. 시민들은 오해 소지 없는 명확한 말을, 그 명확한 말로 미래를 얘기하는 걸 듣고 싶어 한다. 이것도 시대정신이다.
 
이강윤 한국여론조사연구소 소장(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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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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