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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조커’의 방아쇠를 당기게 하지 말라
2021-07-13 00:00:01 2021-07-13 00:00:01
정말 오랜만에 아주 심하게 그리고 강하게 화를 냈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한 마디로 뚜껑이 열렸다. 나는 평소 ‘좋은 게 좋은 거란 세상 이치를 따르며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계에서 갈등 상황에 직면하는 불편함도 싫고관계의 역학을 유심히 살피고 머리 굴리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기며 산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렇게 나의 선을 넘는 사람들이 생긴다. TV 프로그램선을 넘는 녀석들도 아니고 일상에서 수시로 타인의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웃음에 속지 말라는 것뿐이다.
 
웃음은 나와 당신의 관계를 이어주는 좋은 동아줄이 된다 믿었다. 어릴 때부터 웃으면 복이 온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그래서 일까. 나는 인사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하는 어린이였다. 웃는 얼굴로안녕하세요” “안녕이라고 인사하면 사람들은 웃으며 화답했다. ‘웃자. 좋은 게 좋은 거다그렇게 웃으면서 어느새 중년이 됐다.
 
어른이 되니 관계의 역학은 달라졌다. 이젠 웃는 얼굴은 침을 뱉어도 되는 얼굴이다. 분위기 잡으며 인상 쓰고 있어야 눈치 살피고 웃는 얼굴로 받아주면 호구로 본다. 영화부당거래속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아는 세상이 됐다. 답답하다. 웃음을 떠올리며 영화조커가 생각났다. ‘조커는 감독 손끝에서가 아니라 시대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반 영웅이다.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조커를 한 번 더 봤다.    
 
‘조커’ 속 주인공 아서 플렉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병약한 엄마와 함께 사는 그는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현실은 작은 극장 삼류 광대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웃고 또 웃는다. 하지만 그는 사실 참고 있었다. 스스로가 폭발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내면을 압착시키며웃음이란 삶의 방식을 택했다. 요즘 시대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웃음의 형태를 유심히 살필 줄 안다면 계속된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아서 플렉의 첫 살인도 그 웃음에서 시작됐다. ‘웃음의 형태를 살필 줄 몰랐던 선을 넘는 녀석들에게 그는 총을 겨눴다. 압착시켰던 마음은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지닌 채 세상을 향해 터져 나왔다. 이제 아서 플렉의 웃음은 더 이상 호구의 웃음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한 번 참고 두 번 세 번 참으며 이런저런 투정을 다 받아줬더니 내 호의가 자신의 권리인 줄 알고 선을 짓밟고 넘어왔다. 선을 넘는 순간, 관계 유지를 위해 압착시켜왔던 내면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중했지만 차가울 만큼 단호하게 상대와 나의을 인식시켰다. 상대의 사과를 받았지만 마음까지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같이 목소리가 큰 사람들뿐이다. 더 이상 웃음이 대접받지 못한단 걸 알고 새로운 형태의 갑옷을 입은 듯하다. 각자의 선택이니 얼마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입은 갑옷과 다르다 해서웃음이란 갑옷을 두른 상대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상대는 방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것을 억누르고 있는 중이다. ‘조커의 방아쇠를 당겨지게 해선 안 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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