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사발면 출시 시식 회의 중인 고 신춘호 농심 회장(가운데)의 모습. 사진/농심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춘호 농심 회장이 27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 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고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적인 맛을 구현하기 위해 일본 등의 선진화된 제조 설비 도입 대신 농심만의 노하우가 담긴 기술 개발을 적극 주문했다. 평소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다음은 고 신춘호 농심 회장의 주요 어록.
▲1965년 창업당시 라면시장에 진출하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며…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1990년대 해외 수출 본격화에 앞서…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다”
▲2010년 조회사에서…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같다”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
▲2020년 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인 옥수수깡을 출시하며…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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