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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세자매’, 모두가 알고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과 해답
세자매 각기 다른 삶, 그 삶 속에 담긴 불안한 감정과 숨은 비밀
‘불완전한 삶’ 속 ‘완전한 삶’ 꿈꾼 세자매, 각기 다른 ‘현실과 꿈’
2021-01-19 00:00:01 2021-01-19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결과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얘기였을지 모른다.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우애가 깊어 보이고, 또 가장 서로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공간 속에 갇혀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아픔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방식도 전부 달랐다. 가슴 속에서 삭히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하고 또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듯 현실과 악다구니로 싸웠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부 다른 공간으로 각자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작은 균열만이라도 생긴다면 각자가 쌓아 올렸던 거대한 성은 삽시간에 무너질 듯해 보였다. 도대체 이들 세 자매는 왜 이렇게 됐을까. 그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는 그 과거의 비밀은 무엇일까. 영화 세자매가 그들의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한 가지. 행복은 무엇인가. 이들 세자매, 그리고 그 세자매의 가족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고 답이다.
 
 
 
세자매는 제목 그대로 세자매 삶을 뒤섞어 보여준다. 첫째 희숙(김선영)미안한삶을 살고 있다. 그는 모든 게 미안하다. 항상 미안하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딸에게 미안하고 또 남편에게 미안하다. 동생들에게도 미안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모르겠다. 낮은 자존감이 문제는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가 담아왔고, 또 담고 있어야만 했던 그것때문에 미안함이 삶 속에 깊숙이 박혀 버린 듯하다. 그런 모습이 지겨운 듯 딸 보미(김가희)는 엇나간다. 불량청소년이다. 엄마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불량청소년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집안은 음침하고 또 우울하다. 그 안에서 보미의 삶도 한 없이 가라 앉고 또 그렇게 되가는 것 같다. 남편(김의성)은 함께 살지 않는다. 간혹 문자로 돈을 요구한다. 꽃집을 하는 희숙의 가게로 찾아와 폭력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그런 모습에 희숙은 그저 미안할 뿐이다.
 
영화 '세자매' 스틸. 사진/ 리틀빅픽처스
 
둘째 미연(문소리)는 가장 번듯한 삶을 살고 있다. 교수 남편(조현철) 그리고 어여쁜 아들 딸을 두고 있다. 최근 신도시 5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성가대 지휘자이면서 집사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인다. 굳건한 신앙과 단단한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영화 속 미연의 가족만이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감정이다. 영화 밖 관객들은 미연 가족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끊임없이 주님을 찾는 미연의 안간힘이 그 반증 같다. 미연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족이 위태로운 이유를. 그리고 남편의 외도가 눈에 들어왔다. 미연은 진짜 안간힘을 낸다. 무너트리고 싶지 않다. 너무도 지옥 같았던 과거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그 과거에 대한 보상이다. 미연은 악에 받칠 정도로 지금을 부여 잡고 있다.
 
영화 '세자매' 스틸. 사진/ 리틀빅픽처스
 
셋째 미옥(장윤주)는 대책이 없다. 한 없이 착하기만 한 남편(현봉식), 약간의 반항기가 뿜어지는 사춘기 아들. 하지만 이 가족도 묘하다. 아들은 엄마를 창피해 한다. 노랑 염색 머리, 그리고 매일매일 술에 취해 허우적대는 미옥. 미옥은 글을 쓰는 극작가다. 물론 못나가는극작가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미옥은 술에 의지해 현실을 잊으려 안간힘이다. 그리고 묘했던 이 가족. 사실 미옥은 돈 많은 아들 딸린 돌싱남과 결혼했다. 대학로에서 미옥은 돈에 예술혼을 팔아 넘긴 변절자취급을 받고 있다. 미옥은 그런 시선이 괴롭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미옥의 낮은 자존감은 술에 취한 주사가 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둘째 언니 미연과 남편이 미옥의 주사받이로 시달린다. 물론 그들은 가족이란 이름 아래 그걸 받아준다. 그게 고통은 아니다. 사실 미옥도 힘들고 괴롭다. 미옥도 뭔가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미연과 함께 했던 단편적인 기억들. 미옥은 기억하지 못하는(기억하고 싶지 않았을지) 과거가 괴롭다. 도대체 그때 그 기억은 뭘 담고 있을까.
 
영화 '세자매' 스틸. 사진/ 리틀빅픽처스
 
세자매는 현실과 이상이 충돌한다. 그 충돌이 만들어 내는 소소한 웃음이 코미디를 만들어 낸다. 세자매의 각기 다른 삶 속에 작은 코미디가 스며들어 있다. 결과적으로 세자매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다. 이 세자매 삶 속에는 비극도 희극도 없다.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첫째 희숙의 삶이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의 충돌, 둘째 미연이 바라보고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던 현실의 허상, 막내 미옥이 악다구니로 떨쳐내려 한 곱씹고 싶지 않던 되새김 말이다. 그들은 그저 고통스러웠을 뿐이다. 고통을 누군가는 비극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희극으로 받아 들이며 이들 세자매의 삶을 바라보고 그들을 재단한다. 그게 우리, 바로 관객이다.
 
영화 '세자매' 스틸. 사진/ 리틀빅픽처스
 
세자매는 불완전한 삶이다. 반대로 세자매는 완전한 삶을 꿈꿨을지 모른다. 희숙은 자신을 밀어내는 남편과 딸을 죽을 힘을 다해 안간힘을 쓰면서 붙잡고 버틴다. 그걸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연은 껍데기뿐인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미옥은 겉으로만 강한 척을 하고 있다. 사실 누구보다 연약하고 누구보다 부서지기 쉬운 속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곁을 서로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한 발짝만, 그저 서로가 기댈 어깨 하나 내주면 그만일 진데. 그렇게 담고 담았다. 그렇게 참고 참았다. 그렇게 견디고 견뎠다. 결국 터져 버렸다. 터진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각자가 담고 있었고, 각자가 참고 있었고, 각자가 견디고 있던 그것과 마주하게 될 듯싶다. 피할 수 없었기에 도망치기만 했던 세자매가 결국 마주했던 현실이고, 그 현실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어루만져주면서 미안해한다. 누가하는 사과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담기만 했고 참기만 했고 또 견디기만 했던 그것이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영화 '세자매' 스틸. 사진/ 리틀빅픽처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단 걸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세자매는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던 그 문제와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세자매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어렵고 또 가장 힘겹지만 가장 간결한 질문과 해답에 대한 얘기다. 질문과 해답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그것이다. 개봉은 오는 2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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