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은 최대한 얇고 길고 넓게 만들면서 찢어지지 않는 게 기술력이다. 배터리 셀에 들어갈 때 기준 면적만 충족되면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두께는 기능에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동박은 구리를 녹여 종이처럼 얇게 편 것을 말한다.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전자기기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소재로 쓰인다.
지난 9일 방문한 전북 정읍시 소재 SK넥실리스 공장에서는 두루마리 휴지를 연상케 하는 동박이 쉴 틈 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이날 직접 만져본 동박은 머리카락 30분의 1 굵기에 불과할 정도로 얇았지만 잡아 늘여도 잘 찢어지지 않았다.
SK넥실리스의 동박은 업계 평균 수준보다 5~8년 정도 앞섰다는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4㎛(마이크로미터) 2차 전지용 동박을 1.4m 광폭, 30km 길이로 양산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20년 이상 동박 사업을 하며 얻은 SK넥실리스의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날 이재홍 SK넥실리스 경영지원총괄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얇으면서 넓고 긴 동박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SK넥실리스는 일진머티리얼즈, 중국 왓슨, 대만 창춘(CCP)과 함께 동박 '빅4'로 꼽힌다.
김자선 SK넥실리스 동박생산팀장이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6㎛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SKC
SK넥실리스 공장 갔더니…"사람이 없네"
동박 제조 공정은 '용해→제박→슬리팅(자르기)→검사·출하' 4단계로 나뉜다. 이날 SK넥실리스 공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공정 대부분에서 사람의 손길이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이다. 공정 대부분은 자동화돼 있으며 그나마 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제박 공정에도 소수의 관리자만 배치돼 있었다. 완성된 동박을 옮기고 자르는 일도 모두 로봇이나 기계가 한다.
첫 단계인 용해 공정에선 황산 용액에서 구리를 녹이는 작업을 한다. 이날 찾은 용해 작업장에서는 황산 용액이 담긴 거대한 탱크들을 볼 수 있었다.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농도 관리는 센서를 통해서 한다. 농도·온도 관리 시스템인 'DCS(Disrtibuted Control System)'는 센서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상황에 따라 구리 도금액과 첨가제를 조절한다.
제박 공정으로 넘어가자 거대한 티타늄 드럼이 줄지어 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티타늄 드럼 아래쪽에는 동박 제조에 필요한 액체가 담겨 있는데 드럼이 서서히 돌면서 얇은 박을 만드는 방식이다. 드럼에서 뽑힌 동박은 두루마리 휴지 심지 같은 롤(Roll)에 감겼다. 2~3일 동안 기계가 돌아가면서 거대한 '동박롤'을 만드는데, 완성된 제품은 5~6톤에 달한다.
이 공정의 핵심은 동박의 품질이기도 한 얼마나 얇으면서 길고, 넓게 뽑느냐다. 동박은 전기차, IT 기기 등 배터리 종류마다 다른 크기로 들어가는데 일단 넓게 만들어 놓으면 고객사가 원하는 크기로 자르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길이가 길수록 동박 롤을 교체하는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배터리 생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SK넥실리스에 따르면 얇은 동박을 제조하는 것은 다른 선도 업체들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랐지만 이를 길고 넓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상현 SK넥실리스 생산본부장은 "얇을수록 주름이 지거나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2013년 6㎛ 두께를 업계 최초로 양산한 후 현재 4㎛를 거쳐 3㎛를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SK넥실리스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30km 길이로 양산한 4㎛ 동박. 사진/SKC
전기차 시대 맞아 승승장구…생산량 1.5배 늘린다
1996년 LG 계열사로 출발한 SK넥실리스는 올해 초 SK그룹 계열사 SKC 100% 자회사 편입됐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폭풍 성장 조짐이 보이자 SK넥실리스(당시 KCFT)의 잠재력도 향상되면서 SK그룹이 인수를 추진한 것.
실제 SK넥실리스의 주요 고객사도 IT 기기 제조 기업에서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바뀌고 있다. 현재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를 비롯해 중국 CATL, 파나소닉도 SK넥실리스의 동박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후발 업체들이 뛰어들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지만 SK넥실리스는 20여년을 이어온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이 총괄은 "성능 좋은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배터리사들도 고품질의 동박을 원한다"며 "범용 제품을 생산하던 중국 업체들도 최근 들어 길고 넓은 동박 제조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폭발할 전기차 수요에 대응한 공장 증설도 꾸준히 추진한다. 현재 정읍공장에는 5~6공장을 짓고 있는데 완공되면 동박 생산량은 현재 3만4000톤에서 5만2000톤으로 1.5배가량 확대될 전망이다. 해외 시장 대응을 위한 공장 건립도 계획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지역은 검토 중이다. 이 총괄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력에 동남아 시장의 싼 생산 원가를 더하면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며 "증설을 위한 자금 조달 방안으로 유상증자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SK넥실리스 정읍공장 전경. 사진/SKC
정읍=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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