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침묵 끝, 다시 흐른 음악 “어둠 뒤 나팔꽃처럼”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거실 1열 관전기
입력 : 2020-10-20 17:59:03 수정 : 2020-10-21 10:43:2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천에서 급행 타고 가평까지 왔습니다.” “저는 이 공연 끝나면 다시 인천으로 넘어가려고요. 하하”
 
수백, 수천, 수만의 관중들은 ‘21세기 홍길동’처럼 분주했다. 동쪽(가평)에 나타났다가 다시 서쪽(인천)으로 가고, 다시 또 1초 만에 동·서를 잽싸게 오갔다. 지난 16~17일 이 군중들이 만든 가상 ‘조류’에 함께 쓸려가 보기로 했다.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대를 관람하다, 나윤선의 샹송과 아리랑을 듣고, 다시 35주년 부활의 무대를 관람하는 것이 삽시간에 가능했다. 
 
이틀 간 클릭 몇 번으로 유튜브 채널을 넘나들며 비대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거실 1열에서 편하게 관람했다. 각각 15주년과 17주년을 맞은 두 페스티벌은 록과 재즈, 각 장르를 대표하는 국내의 굵직한 음악 페스티벌이다. 하지만 코로나 19 장기화 여파에 올해 두 축제는 전면 온라인 생중계로 대체하는 실험에 나섰다. 펜타포트는 기존 3일을 2일로 단축했고, 자라섬은 3일을 17주년에 맞춘 17일(10월9~25일)로 늘려 진행하고 있다.
 
누적 관객 75만명을 동원한 온라인 '15주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사진/펜타포트 락페스티벌
 
3시부터 한 시간 단위로 꽉 찬 공연 스케줄. 적절히 시간을 안배하면 록과 재즈, 심지어 월드뮤직까지, 거하게 차린 한상차림의 라이브 음악을 골고루 섭취할 수가 있었다. 이제 갓 녹화한 따끈한 기타 울림이나 폭격 같은 스네어 드럼의 난타도 저 먼 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해 동시간대 한국에서 울려 퍼졌다. 노란색 박수 모양의 이모티콘들이 반딧불이 들불처럼 번져 불야성을 이뤘다.
 
16일 펜타포트는 경기 소리꾼 이희문이 이끄는 ‘오방신과(OBSG)’의 파격 무대로 포문을 열었다. ‘날이 솟아’, ‘타령’, ‘개소리’…. 아프로와 형광 염색 머리, 하이힐과 한쪽 무릎만 걷어 올린 패션으로 살랑살랑 춤을 추니 “인천 연안부두(펜타포트 인근)로 달려가고 싶다”는 댓글들이 속출했다. 
 
지난해 33년 만에 합작 앨범을 낸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의 무대는 가히 ‘음악 순혈주의자들’의 공연이라 할만 했다. ‘샴푸의 요정’, ‘오래된 친구’, ‘어떤 이의 꿈’ 등 서로의 노래를 함께 부른 이들은, 김현식부터 유재하, 전태관에 이르는 대중음악사의 계보를 읊는 무대를 차례로 이어갔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저희의 곁을 떠나간 동료분들, 선배님들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김종진 멘트가 끝남과 동시, 수천명의 온라인 관객들 앞에 1986년 ‘김현식의 백밴드(봄여름가을겨울 전신)’나, 유재하의 그때 그 연주, 그 노래가 묵혀뒀던 가을 향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너도 변했으니까/너의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 변한거야’(1986년, 봄여름가을겨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1987년, 유재하 ‘가리워진 길’)
 
이들이 지핀 열기는 올해 결성 35주년을 맞은 밴드 부활이 다음날 이어갔다. 부활은 시나위, 백두산과 함께 80년대 그룹사운드의 전설로 꼽히는 밴드. 하드록, 밴드음악의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이들은 올해부터 ‘김태원-박완규’ 체제로 새로운 도약에 나서고 있다. 록 버전의 ‘Nella Fantasia’로 무대를 연 이들은 전설답게 연륜이 묻어나는 사운드와 무대 매너를 무대에서 펼쳐댔다. ‘희야’, ‘새벽’, ‘사랑할수록’ …, ‘Never Ending Stroy’, 매년 3만 관객 이상이 집결하는 거대 무대 앞이 휑했지만, “현장 몇분 호응 좀 부탁드립니다”는 김태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지만, 음악은 무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부활 김태원.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자우림과 국카스텐, 넬, 이디오테잎 등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록과 전자음악 밴드 공연도 이틀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코로나19 시대 맞춤 곡들을 선곡한 각 밴드들의 무대와 멘트를 보고 듣는 재미가 남달랐다. 넬은 ‘우리가 함께 있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When we are not together We are so much better)’란 가사가 담긴 'Grey zone'을 마지막 곡으로 선곡했다. ‘하하하송’과 ‘매직카펫라이드’ 같이 밝고 쾌할한 음악으로 무대를 연 자우림은 “공익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국민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영국 록 밴드 트래비스와 미국 포스트 메탈 밴드 데프 헤븐은 사전 제작한 영상을 저 바다 건너 보내왔다. 트래비스 보컬 프랜시스 힐리의 “내년에는 꼭 펜타포트에 참석하길 간절히 기원한다”는 말이 수만의 두손 합장 이모티콘 물결로 이어졌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넬의 무대. 사진/유튜브 캡처
 
17일 저녁 6시, 펜타포트와 비슷한 시간대에는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채널에도 몇백의 관객들이 성황을 이뤘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한 국내 독보적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과 전자음악가 여노의 특별한 무대가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대양을 밀어낼 듯한 모듈러신스의 파고를 탄 나윤선 목소리는 그 자체가 다층적 세계였다. 재즈를 근저에 깔되 스페인 플라멩코와 프랑스 샹송을 뒤섞고, 끝내 한국 전통 민요 아리랑까지 겹쳐내며 지구를 잇는 음악을 펼쳐냈다. 혀를 동그랗게 말거나 3단으로 짤라가며 올리는 고음에서는 제 5의 세계에 온듯한 환영이 일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선 나윤선과 여노의 무대. 사진/유튜브 캡처
 
18일 오후 2시에는 두 페스티벌에 이어 옥상달빛의 온라인 유료 단독 공연이 카카오tv에서 열렸다. 높게 뻗은 나무들과 오후 자연광을 배경으로 '잘 지내, 어디서든',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어른이 될 시간', '수고했어 오늘도' 등의 대표곡 무대를 꾸몄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새소리가 뒤섞이고 햇빛의 각도가 미세하게 바뀌는 풍경 연출이 돋보였다.
 
3일간 곡이 끝날 때마다 불쑥 불쑥 찾아오는 침묵은 뮤지션과 관객 모두에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유령 앞에 두고 하는 공연’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달까. 
 
그럼에도 쇼는 계속돼야만 했다. 침묵 끝 다시 음악은 이어지고 이어졌다. 어색한 공기는 대체로 누그러졌다. 그런대로 괜찮아졌다. 
 
누적 관객 78만이 참관한 펜타포트 대미를 장식한 국카스텐의 말에서 이 시대의 힌트를 얻었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꽃처럼 피어있자고. 어둠을 째고 피어난 나팔꽃이나 향기가 없어도 피어난 동백꽃처럼 그렇게. 
 
“계속 그렇게 활짝 핀 모습으로 조만간 다시 공연장에서 뵙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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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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