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과거사엔 항소 포기, 베트남 학살엔 ‘상고’…법무부의 ‘이중잣대’
1·2심 모두 국가 책임 인정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상고
2026-06-01 18:31:38 2026-06-01 19:13:37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법무부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했더라고 곧바로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대법원에 제출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부인하고, 대법원에 상고하면서입니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대한민국 군인의 민간인 총격·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법무부가 "과거사 사건의 '관행적 상소'를 자제하겠다"고 했던 행보와는 결이 달라 이중 잣대 논란이 나옵니다.
 
퐁니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씨(사진 왼쪽)가 지난해 6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피해를 증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심리기 진행 중입니다. 응우옌티탄씨는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이른바 '퐁니 사건'의 생존자입니다.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응우옌티탄씨는 가족 5명을 잃었고, 본인도 복부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앞서 1·2심은 모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실과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항소를 기각하고 응우옌티탄씨에게 3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의 어머니를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곳에 모아놓고 총격을 가하여 살해한 행위는 고의 또는 적어도 과실"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원고와 그 가족·친족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행위로서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민간인 학살 인정 못한다"…대한민국 정부 상고이유서 보니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원심에 불복해 상고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대한민국의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정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소속 군인의 민간인 학살이나 원고에 대한 총격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설령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국가배상 책임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상고이유서엔 "(베트남 전쟁 기간 중) 부득이 민간인에게 피해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정당한 교전 상황에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피해 대상이 민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국가배상의 요건사실인 고의·과실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면밀히 심리하였어야 하나, 원심 판결은 그러하지 못한 위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베트남 현지인들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1·2심에서 베트남 현지인들은 국군이 민간인들을 한데 모아 총격을 가하거나, 칼로 찔러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해당 인물들의 진술은 기본적으로 친소 관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고, 원고 측에 편향된 진술"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사 사건은 상고 포기했는데…베트남전 사건은 왜 예외?
 
이는 이재명정부 출범 후 대한민국 정부가 밝힌 과거사 사건 대응 원칙과는 대조적입니다. 대한민국을 당사자로 하는 국가소송에서 정부의 법률상 대표는 법무부입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 등 국가폭력 사건과 관련해 관행적으로 제기해 오던 항소·상고를 취하하거나 포기하고 있습니다. 또 진실이 규명된 과거사 사건에 대해선 소멸시효 항변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은 국가 책임을 다투는 것은 물론, 학살 사실 자체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응우옌티탄씨를 대리하는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는 "국내 과거사 사건들은 정부가 대부분 항소나 상고를 취하했는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만 예외로 남아 있다"며 "상고를 취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학살에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 정도는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민주당 대표 시절 퐁니 사건 1심 판결을 환영한 바 있다"며 "상고심에서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 피해자 권리 회복에 나서길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2023년 2월 퐁니 사건 1심 선고 직후 "일본의 (강제)징용이나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의 문명국가로서의 입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일본이 걷고 있는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라며 환영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은 "정부가 베트남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며 "소송이 제기된 지 6년이 넘었는데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국가의 사과와 배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번 소송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를 주장하는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 사건"이라며 "아직 확립된 선례가 없는 만큼, 법리 및 사실관계의 핵심 쟁점에 대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고자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특히 국가배상법상 외국인의 배상 청구권은 '상호보증주의' 원칙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개별 사건을 넘어 향후 유사 사건과 국가 간 법률관계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대법원의 최종적인 법리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정부의 소송 대응과 별개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역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과거사 진실규명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꼽히는 하미 사건에 대해 진화위가 조사 개시 각하 처분을 내린 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 상고심과 관련해 진화위는 "외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건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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