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버터'가 빌보드에서 롱런하는 동안, 마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연승을 거두는 것처럼 응원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곤해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팬덤의 결집으로 인해 차트 성적이 과대 평가됐다는 것. 즉, 대중의 주요 음악 소비인 스트리밍에서는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경쟁자들에 많이 밀렸다.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도 ‘버터'를 뛰어넘는 곡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운로드와 피지컬 판매량에서 팬덤은 압도적인 화력을 보이며 ‘버터'의 롱런을 견인했다. 디지털 싱글 뿐만 아니라 카세트 테이프와 바이닐로도 발매됐고, 다양한 커버 이미지의 버전, 리믹스 버전 등 디지털 포맷도 나올 때 마다 팬덤을 결집시켰다. 팬덤 밖에서는 부정적 시선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찬반을 떠나, 이 사안은 스트리밍이 대세인 시대에 다운로드 및 음반 구입이라는 ‘구매' 행위야말로 팬덤 비즈니스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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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창업자의 주식 매각으로 곧 주인이 바뀔 예정인 SM엔터테인먼트의 2분기 실적은 놀랍다. 한화증권의 리포트에 따르면 엔시티와 엑소가 각각 292만장, 122만장을 팔았다. 샤이니는 27만장을 판매했다. 올해 나온 보이밴드들의 신보만 총 428만장이 팔린 것이다. 게다가 기존 앨범(구보)도 164만장이 팔렸다. SM 내부서도 예상을 뛰어넘은 음반 판매량에 대해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의문. 음악을 음반으로 듣는 사람은 오래전에 사실상 소멸했다. CD플레이어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PC에도 CD롬이 사라진지 오래다. 몇 년전부터 바이닐 붐이 일긴 했지만 여전히 매니아의 취미거나, 소장용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음반 구매량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팬덤에게 음반은 굿즈이거나 팬싸인회 응모를 위한 티켓과 같은 개념으로 자리잡은지 한참이 됐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SM의 사례에서 보듯, 새 앨범 뿐만 아니라 기존 앨범의 판매까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이돌 팬덤과 일반 음악팬의 차이를 살펴보자. 아이돌 팬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기록'에 지극히 민감하다. 한 명이 대량의 음반을 구매하는 문화는 일본에서 탄생했지만, 이것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팬이 기록을 만들어준다'는 개념을 덧입혀줬다. 대표적인 일본 아이돌인 AKB48의 팬은 음반을 수십장씩 사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오리콘 기록은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팬덤은 자신의 욕망, 즉 팬싸인회 참가나 소장을 넘어 기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스밍', '총공', '올킬', '지붕 뚫기' 등등의 개념이 2010년을 전후한 한국에서 탄생한 이유다.
케이팝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팬덤의 주요 공략 대상은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이었다. 실시간 차트는 팬덤의 전쟁터였다. 누가 몇 시간, 며칠동안 차트에서 1위를 하는 지에 따라 팬덤의 희비가 갈렸다. 활동기간이 겹치치 않는 타 아이돌 팬덤과 연합하기도 하고, 가족의 아이디를 총동원해서 스트리밍을 돌려가며 자신의 아이돌을 1위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사재기 논란과 더불어 '스밍총공'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쌓여갔다. 결국 멜론은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일일 차트로 변경했다.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1위가 힘들어진 것이다. 장기집권 또한 마찬가지고. 놀이터가 사라진 것이다. 사람은 놀이터가 사라지면 새로운 곳에 눈을 돌리기 마련. 실시간 음원 차트는 사라졌어도 음반 판매량은 여전히 매혹적인 기록의 놀이터다. BTS팬덤이 스트리밍과 에어플레이의 열세를 압도적 다운로드와 피지컬 구매로 찍어 누르며 '버터'와 '퍼미션 투 댄스'의 장기집권을 만들어낸 것 또한 좋은 전례가 됐다. '버터'의 빌보드 1위 등극 이후, 아이돌 팬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음반 구매를 독려했다. 또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음반 구매 시 팬 싸인회 대신 아티스트와의 영상통화에 응모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엄청난 구매 동기가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아이돌 팬덤에게 인기 있는 유튜브 컨텐츠는 음반 언박싱이다. ‘앨범깡’이라 불리는 이 컨텐츠 제작을 위해 한 장, 포장을 뜯지 않은 온전한 버전 소유를 위해 한 장을 구매한다. 최소한 2장을 구매하는 게 대세를 넘어 당연시 됐다. 소장의 욕망을 넘어 활용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음악 산업의 최대 고부가가치 산업인 콘서트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음반은 공연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엇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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