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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n번방과 반성문
입력 : 2020-04-16 오전 6:00:00
어릴 때 누구나 반성문을 한번쯤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성문은 대개 사건의 개요와 자신의 잘못에 대한 고찰, 상대의 용서를 구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때의 반성문이란 동생과 싸웠을 때나 숙제를 해오지 않았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써서 내는 정도였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반성문에 담긴 나의 '진심'과 '태도'를 살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법원에서 그 반성문이 이슈다. 미성년자 등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음란영상방 운영자들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잇달아 제출하면서다. '박사방' 조주빈과 공모해 미성년자를 성폭행 한 혐의를 받는 한모씨는 지난달 19일부터 총 20번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홍보맨을 자처한 '와치맨' 전모씨도 15차례 반성문을 냈다. 박사방 중 하나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는 '태평양' 이모씨와 조주빈에게 자신의 고교 담임 자녀의 살인을 청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도 반성문을 썼다. 
 
피고인들이 쓰는 반성문은 형법에 특정돼 있지 않지만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 작량감경과 관련이 있다. 자신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태도가 재판부와 피해자의 마음을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학교에서 쓰는 반성문도 진심이 중요한데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반성문에는 감형에 대한 욕심만이 담겨있다는 게 문제다. 여태까지 밝혀진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텔레그램 음란영상방 주범들의 반성문에는 대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과 가족들을 생각해서 선처해달라는 호소가 대부분이었다. 5만원만 내고 성범죄에 대한 반성문 수천 건을 다운받았다는 사례도 나왔다. 자신들이 법적으로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질렀는지, 범죄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줬는지 등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가늠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재판장이 "이런 반성문은 쓰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할 정도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어 '반성하고 있다', '초범이다'라는 등의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가벼운 판결을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텔레그램방 같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제 법원의 시간이다. 실체 없는 반성을 감경요소에서 배제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원을 향한 국민들의 요구일터다.  
 
왕해나 사회부 기자(haena07@etomato.com)
 
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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