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장마 뒤 따뜻한 햇볕 같은 멜로
사랑이란 감성과 연애란 감성의 차이 짚어낸 작품
2018-03-07 14:22:27 2018-03-07 15:31:4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비’는 영화에선 부정적인 상징성을 나타낸다. 우울함 혹은 불안함을 표현할 때 등장하는 일종의 복선 장치다. 물론 가끔씩은 분위기 전환 혹은 희망과 행복을 그리기도 한다. 동명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비’는 그리움이고 희망이고 바람이며 행복이다. 오히려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맑은 날은 불안함이다. 아들 ‘지호’(김지환)는 길고 긴 장마를 기다린다. 비가 오면 떠나간 엄마(수아, 손예진)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비가 오래 내릴수록 엄마가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지호는 그렇게 믿는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 동화가 스크린에 투영된다.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 펭귄이 땅에 있는 아들 펭귄을 그리워하면서 내려다본다.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눈물은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오면 엄마 펭귄은 빗방울 기차를 타고 땅으로 내려올 수 있다. 수아가 아들 지호를 위해 만들어 준 동화책이다. 사실 수아는 죽었다. 아들에겐 ‘비가 오면 다시 돌아오겠다. 엄마 펭귄처럼’이란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그 약속을 믿는 아들 지호의 모습을 아빠 우진(소지섭)은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도 믿고 싶다. 아내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꿈을 믿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 TV뉴스에서 장마의 시작을 알린다.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됐다. 지호는 행복하다. 엄마가 돌아온다. 하지만 죽은 아내가 돌아올 리 만무하다. 우진은 지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그런데 돌아왔다. 아내 수아가. 그리고 엄마가. 두 사람 앞에 아내이자 엄마인 수아가 나타났다. 대체 죽은 아내가 어떻게 돌아온 것일까. 하지만 지호는 믿는다. 엄마가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엄마 펭귄처럼 빗방울 기차를 타고 하늘나라에서 아빠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고. 그런데 좀 이상하다. 엄마가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우진에겐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 그대로다. 지호에겐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던 엄마다. 두 사람은 장마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길고 긴 장마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낸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일본 원작 소설과 일본 영화가 먼저 국내에 소개되고 개봉돼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품이다. 국내 버전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원작 소설과 영화를 본 관객, 혹은 보지 않은 관객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 아니 단 한 가지 지점만으로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원작 소설과 일본 버전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작품이다. 바로 감성의 차이점을 잡아낸 부분이다.
 
국내 버전 영화의 주된 동력은 ‘우진’과 ‘수아’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이 모습은 과거와 현재의 교차 방식으로 디테일을 살렸다. 설레고 가슴 뛰는 과거 풋풋했던 시절의 두 사람 그리고 그 과거를 기억하며 반추하는 현재의 두 사람. 사랑이란 감정과 연애란 감성의 차이를 짚어낸 연출의 힘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수아의 손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진의 모습. 그런 우진의 외투 속으로 손을 짚어 넣어주는 수아의 움직임. 멜로의 지점에서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이 같은 디테일은 묘한 긴장감의 연속이다. 격정적인 애정신 그리고 포옹 뜨거운 키스 한 번 나오지 않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도 설렘과 애틋함의 정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31분 러닝타임 동안 설렘과 애틋함으로만 채우지는 않는다. 우진의 고교 동창 홍구(고창석), 우진의 직장 상사 ‘최강사’(이준혁)가 터트리는 적재적소의 코미디는 길고 긴 장마 속 멜로의 빗방울 속에 숨은 단맛처럼 느껴진다. 공개를 할 수 없는 카메오 두 명의 존재감은 영화 말미에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 히든카드로 등장하며 ‘느낌표’를 선사한다.
 
우진과 수아의 가슴 절절한 그리고 풋풋하면서도 애틋한 멜로가 살아날 수 있는 지점은 사실 아들 지호를 연기한 아역 김지환의 존재감이다. 엄마와의 시간을 이어가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 학예회에서 고백하는 엄마와의 약속은 멜로 자체가 가진 순수성을 대변하는 상징이며 그 자체로서 멜로의 다른 얼굴이 된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낸 과거의 설렘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마법처럼 풀어낸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햇볕이 내리쬐는 우진과 지호가 사는 집 앞마당에도 어느 덧 꽃이 핀다. 이제 비가 그칠 것을 두려워하는 우진과 지호의 모습은 없다. 따뜻한 햇볕 뒤에서 자신들을 내려다 볼 하늘 나라의 ‘엄마 그리고 아내’ 수아를 바라보는 두 남자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긴 장마 뒤 맑게 갠 하늘 위 구름 같은 영화다. 개봉은 오는 14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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