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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2016-07-14 06:00:00 2016-07-14 06:07:17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국가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본질과 현상(말)을 구분해보아야 한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선언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도록 명시한 많은 법률을 제정한 인류 문명국가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근 약 10년간은 국가권력이 우리를 개·돼지 취급 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우리의 안방에 침투하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아무런 보호도 못한 국가, 300여명의 희생자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찬 바닷물 아래 있지만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는 국가, 진실을 보도하려는 공영방송사에 보도지침을 내리는 청와대, 채 먹지 못한 컵라면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열 아홉살 청년을 방관한 국가. 이것이 현실이다.
 
지금 온 나라가 민중을 개·돼지라고 규정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교육 기획관을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가 한 말은 국가권력의 본질과 현상을 제대로 표현했다. 국가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거칠게 표현했을 뿐이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고, 노인은 가난에 목숨을 잃고 있다. 수십조원의 예산을 4대강과 해외자원외교로 탕진했지만, 어린아이 보육비와 학생들 밥값을 위해선 국가 예산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전경련을 통해 수억원의 비자금을 받아 관제데모를 한 어버이연합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해도,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에게는 도심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국정원이 대선에서 댓글을 달고 심지어 간첩을 조작해도 테러방지법이라는 더 큰 무기를 안겨주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국가다.
 
국가는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니며 살 수 있는 여건을 빼앗았다. 그리고 사상과 집회결사라는 헌법상 자유는 집시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발아래 짓밟혀버렸다. 사회 곳곳에서 안전은 사라지고 이윤추구만 남았다.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공공성을 버렸다. 인권과 안전, 그리고 환경기본권은 국가 의제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다. 그저 정권 재창출에만 목숨 걸고 탈법을 일삼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모두 제거됐다. 대선에 개입한 전직 국가정보원장 기소범위를 두고 현직 검찰총장을 혼외자를 문제 삼아 쫓아냈다. 간첩조작사건 진실을 밝히고자 정당한 변호활동을 한 변호인들은 오히려 법무부 징계대상자가 됐다. 언론은 통제대상이 됐고, 국민은 감시대상이 됐다. 그저 침묵하는 것, 이것이 생존전략이 됐다. 
 
어쩌면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는 사법부의 균형추도 기울었다. 수백억원의 전관예우 수임료를 올린 홍만표 변호사는 구속기소 하면서, 그 부당거래의 상대방인 현직 판·검사들에게는 면죄부를 주지 않았던가?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이를 행한 국가권력은 위법하지 않다는 법리를 개발한 대법원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 구조활동을 제대로 못한 책임자 처벌에는 해경수뇌부가 빠진 반면, 구조활동에 목숨을 걸었던 민간잠수사는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버티던 대형조선소에 내려간 친박 낙하산과 산업은행퇴직자들은 성과급 잔치로 혈세를 야금야금 빼먹었지만 아무런 수사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반면, 협력업체 노동자 수 만명과 가족들은 거리로 내몰릴 위기다.
 
조선시대 말 가난에 굶주려 떠돌이 유민생활을 하던 민초들과 지금 우리 국민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과도한 상상력의 비약일까?
 
국가가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나향욱은 현실을 정확히 표현했지만, 본질은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되었다. 1년 반 뒤엔 대선이다. 이제 개·돼지 신세를 면할 수 있을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차례다. 어떤 국가시스템과 지도자를 만들 것인가는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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