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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개발을 꿈꾸는 국회의원 당선인들에게
2016-05-03 07:00:00 2016-05-03 07:00:00
◇전재경 만민공회 호민관
유권자들이 무심코 지나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는 정치 행태가 있다. 각종 선거에서 등장하는 후보들의 개발공약이다. 이번 4·13 총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벅찰 만큼 많은 지역구 개발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당선인들은 국회에 등원하면 어떻게 자신의 공약을 이행할 것인지를 고심할 것이다. 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임위원회를 희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당선인들의 개발공약은 방향 착오일 뿐만 아니라 법리에 비춰보면 위헌 소지가 있다.

선거공약은 일반적으로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보장된다. 지키지 못할 '과대공약'이 문제가 아니라 공약의 내용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탈선공약'이 문제다.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의 선거공약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후보들의 선거공약이 단체장의 공약을 그대로 모방하는 현상이 문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과천시 의원에 출마한 K후보는 도로변 방음벽 공사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이는 같은 시 시장에 출마한 L후보의 공약과 내용이 같았다. 이들은 당선된 후에도 방음벽 공사가 자신들의 공약임을 내세워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공사완료 후에는 이 공사가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20년전 1996년 4월 총선에서는 "지역내 그린벨트에 대학을 설립하고 서민주택을 건설하겠다"(서울 은평을 L후보), "관내의 그린벨트를 모두 풀어주고 고압 송전선을 못 들어오게 막아주겠다"(경기 과천·의왕 P후보), "철도를 부설하고 항공우주공단을 조성하겠으며 그린벨트 지역을 모두 국가에서 매입·보상하도록 하겠다"(충남 서산 A후보), "각 동마다 소공원을 조성하겠다"(서울 마포갑 P후보) 등의 선거공약이 등장했다.
 
올해 총선에서도 개발공약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선인들의 명예와 관련이 있어 적시하기 어렵지만, 지방선거 공약에 적절한 그래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본분을 벗어나는 공약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각자에게 그의 것을"이라는 정의(正義)의 기본원리에 비춰본다면 이러한 '공약의 혼동'은 잘못됐다. 더 유감스러운 현상은 당선 후에도 선거공약을 지키려고 의원이 "의원 본연의 지위를 일탈한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체장들의 공약과 중첩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의 개발공약이 타당한가라는 의구심은 권력분립을 규정하는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자명해진다. 헌법상 국회는 입법기관이다(제40조). 국회는 예산안을 심의하고(제54조), 국정을 감사한다(제61조). 국회가 하는 일이란 행정부의 행위에 대한 동의권을 제외하고는 이것이 전부다. 개발이 국회의 직무가 아니라면 국회의원의 직무도 개발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선거에서 개발공약을 내건다. 또 예산심의와 국정감사를 틈타 자기 지역구의 개발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고 이를 자기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개발공약·시설유치공약 또는 규제완화 등의 공약은 의원의 지위를 변질시키고 권력분립 원리를 침해함으로써 헌법정신에 반한다. 또 의원들로 하여금 직권을 남용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의원 후보라고 하여 헌법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후보도 공직선거에 나서는 순간 공법관계에 접어든다. 헌법정신의 파훼를 막기 위해 의원들이나 그 후보들은 스스로를 출신 지역구의 수호자 내지 맹주라고 여기는 의식을 벗어나야 한다.
 
사업형 공약의 위헌성 내지 폐단은 후보들보다 현역 의원들에게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 의원의 지위를 실추시키는 사업형·개발성 공약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법이나 지방자치법에 제척·기피 및 회피 조항을 두어야 한다. 또 의회 의장 또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특정 의원이 출신 지역구와 관련이 있는 예산안의 심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외시켜야 한다. 간접적 영향력 행사를 봉쇄하기 위해 동료의원 상호간에 기피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하여야 한다. 해당 의원 스스로 개입을 회피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의원의 지위를 회복하고 공직선거 후보들의 감언이설형 탈선공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을 고쳐 ‘공약에 관한 규제’를 법제화하여야 한다. "권한을 넘는 공약(또는 권한 밖의 공약)을 금지한다"는 명문규정을 둬야 한다. 의원의 공약으로 부적절한 유형들을 구체적으로 예시해야 한다. 의원의 공약이 행정부 수반의 그것을 닮지 않도록 규율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하거나 선거용 홍보물 등의 접수를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 후에 이 같은 주장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재경 만민공회 호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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