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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불안한 삶, 맹목적 믿음
2015-11-28 13:17:16 2015-11-28 13:17:16
여우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우리 옛이야기 속 여우는 갖은 술수를 부리는 요물로 등장하곤 하지요. 서양문학에서도 주로 영악한 동물로 묘사되곤 하는데요. 하지만 막상 우리는 여우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말과 글로 전해진 내용에 의존해 여우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만들어내고 있지요. 실제로는 보기 힘든 동물인데도 제법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여우를 모티프로 삼아 쓴 희곡 '폭스파인더(foxfinder)'가 현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 중입니다. 던 킹이라는 영국 극작가가 쓴 이 작품을 무대화하고자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배우와 박지혜 연출가 등으로 구성된 양손프로젝트, 그리고 객원배우 최희진이 힘을 합쳤습니다.
 
양손프로젝트 '폭스파인더' (사진=두산아트센터)
 
극에서는 시대와 지역이 정확히 명시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는 어떤 시공간이란 것만 짐작할 수 있지요. 사무엘과 주디스는 농장을 운영하는 부부인데요, 이들은 생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었고, 심한 폭우와 병충해가 계속되면서 작황도 여의치 않기 때문인데요. 생산성 하락을 걱정하는 정부는 급기야 곡물 수확량이 줄어든 이 농가에 19살짜리 여우수색 조사원(foxfinder) 블루어를 급파하기에 이릅니다.
 
정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훈련 받은 조사원인 블루어는 '모든 재난은 여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마을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남을 고발하지 않으면 내가 곤경에 처하는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의 신뢰 관계는 서서히 흔들립니다. 또한 생의 고통 속에서 어딘가 비난의 화살을 던질 곳이 필요한 소시민에게 여우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데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 가운데 사람들은 점차 블루어의 말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여우가 작물을 망치는 것을 본 사람도 없고, 여우가 실제 있는지조차 불분명한데도 말이지요.
 
얼핏 이 작품은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7세기 미국을 무대로 한 아서 밀러의 명작 희곡 ‘시련’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시련'에서 좀더 업데이트 되어 현재를 증언하고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가령 '여우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불순한 선동자로 분류돼 피해를 입는다는 점, 정부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이 점점 입을 닫고 살게 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개인의 세계관이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연이은 불행에 마음 기댈 곳 없던 사무엘이 점차 블루어의 말을 믿게 되는 과정, 정부로부터 엄격하게 훈련 받은 블루어가 자기 말을 믿게 되는 사무엘을 보며 되려 자각을 하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극의 내용에 맞게 형식화된 무대 또한 인상적입니다.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무대를 맡았는데요. 흰색 벽면으로 둘러쌓여 마치 무균상태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극장 공간에는 높은 위치에 작은 크기의 창들이 뚫려 있어 누군가가 이 안을 내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한 무대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관객석이 배치된 점도 눈길을 끄는데요. 덕분에 관객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마주 앉은 채 마치 서로 감시하고 감시받는 듯한 상황을 몸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연명: 연극 '폭스파인더'
-날짜·장소: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02-708-5001)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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