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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금융에 기업 망쳤다" 본업 벗어난 산은의 탐욕
2015-08-05 07:00:00 2015-08-05 07:00:00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2분기 3조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의 관리 책임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행규 전 거제 시의원은 요즘 대우조선해양 이야기만 나오면 화부터 낸다. 대우조선해양은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부도로 워크아웃과 산은에 매각되는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조선과 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이 산은에 매각된 후 2000년대 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개탄했다. 정부의 조선업 정책에 휘둘렸고 산은이 정부의 입맛대로 기업금융을 일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의원은 정부가 그간 누적된 조선업종의 부실을 대우조선해양에 모두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각각 삼성그룹과 현대중공업이라는 재벌이 버티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산은이 최대주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만만했다는 것이다. "산은은 경남 21세기조선소과 성동조선소 등을 대우조선해양이 다 인수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선·플랜트 업계 기업 40여곳을 떠안게 된거죠."
 
실제로 산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의 계열사는 41곳(국내 17곳, 해외 24곳)으로, 대부분 남상태 사장(2006년~2012년) 때부터 인수가 이뤄졌다. 산은은 올 초에도 STX프랑스를 대우조선해양에 매각하려고 했다가 노조 반대로 무산됐다.
 
경남 하동군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투자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갈사만 조선산업단지는 정부가 2000년대 말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플랜트 산업단지 조성계획이지만 시공사 공사지연과 공사대금 미지급 사태가 겹치면서 사입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이에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에 갈사만 투자를 종용했고 2010년 남상태 사장이 66만1000㎡(2만평)을 1400억원으로 매입해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가 경남 하동군 갈사만에 조성할 조선산업단지 조감도. 갈사만 조선산업단지는 하동군 금남면 갈사리와 가덕리 일원 해면부 317만4000㎡와 육지부 243만9000㎡ 등 561만3000㎡의 부지에 조성될 계획이다. 사진/뉴시스
이 의원과 노조 측은 "갈사만은 조수간만 차가 7m나 돼 선박이 접안할 여건이 도저히 안 된다"며 "아무도 투자를 안 하니 대우조선에 투자를 강제했고 남상태 사장도 온갖 핑계로 거부하다가 마지 못해 땅을 샀다"고 주장했다.
 
산은이 주채권은행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산은은 부실기업을 인수해 경영이 정상화되면 시장에 매각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그런데 그동안 매각은커녕 구조조정조차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부실회사 중 알짜배기를 계열사로 두거나 퇴직을 앞둔 산은 인사를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낙하산으로 보내 영향력을 키우는 모습이다. KDB대우증권, KDB캐피탈, KDB생명, KDB자산운용, KDB인프라운용 등을 주요 계열사로 뒀으며, 올해 1월 기준으로 산은이 주채권은행으로 지정된 14곳에 총 34명의 낙하산을 보냈다. 이쯤되면 산은이 정책금융의 맏형 역할을 빌미로 정치금융을 일삼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산은의 이런 전횡에는 산은법이 버티고 있다. 산은법 44조는 '산은의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립해준다'고 돼 있다. 산은이 정책금융 자금을 쉽게 쓰고 구조조정을 빌미로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은은 법적 특혜와 주채권은행의 지위를 이용해 지난해말 기준 자산규모만 277조원에 이른다. 특히 내년 7월부터 정책금융공사와의 재결합을 통해 통합산업은행이 재출범함에 따라 영향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산은이 '은행'을 넘어 '산업재벌'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 기관들은 시중은행이 지원하기 어려운 투자위험이나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지속적인 현금·현물 출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해주고 있다"며 "정책금융 기관들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한 자금지원을 할 우려가 있고, 그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산업은행 출신 낙하산 현황. 자료/금융감독원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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