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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그린손보 인수전에 뛰어들었나
대유 판 깔고, MG 판 키우고…자베즈의 끝모를 역량
2015-07-07 10:00:00 2015-07-10 10:47:54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2012년 2월29일 서울 강남구 그린손해보험 본사를 주식 시세 조종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경영난에 빠졌던 그린손보는 자베즈 제2호 투자목적회사에 인수돼 2013년 5월 MG손해보험으로 바뀐다. 사진/뉴시스
 
사모펀드 운용사 자베즈파트너스가 그린손해보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건 2011년 말이다. 당시 박신철 자베즈 대표는 이영두 그린손보 회장을 찾아간다. 그린손보가 금융위원회로부터 경영개선계획을 주문받아 정상화 방안을 찾던 때였다. 더욱이 부산은행과 SK, 롯데 등으로의 매각이 좌절된 터라 이 회장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사모펀드 운용사에 손보사는 매력 있는 먹잇감이었다. 손보업계는 진입 장벽이 높다. 국내 손보사는 10여곳에 불과하다. 그린손보에도 대기업과 금융권의 러브콜이 심심찮게 이어졌던 이유는 그린손보가 갖고 있던 손해보험업 면허 때문이었다. 그린손보 전 임원 A씨는 "박 대표가 우릴 찾아와 '관심을 갖고 있다. 돕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관건은 돈이었다. 자베즈는 2009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출범했다. 그린손보 인수를 준비하던 2011년에도 10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수천억원에 이를 인수자금을 마련하려면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했다. 특히 시장에서 신뢰할 만한 큰 손이 절실했다.
 
자베즈는 '자베즈 제2호 투자목적회사'를 꾸려 2012년 11월12일 그린손보 공개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자금은 1800억원. 자베즈 자본금의 18배에 이르는 거액이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건 전적으로 운용사 능력이라 사적인 창구도 많이 쓰인다"며 "운용사는 얼굴 마담 역할만 하고 자금줄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베즈의 시나리오는 박 대표와 특수관계인 대유에이텍이 판을 깔아주면서 현실이 됐다.
 
◇'특수관계' 자베즈와 대유
 
대유는 인수과정 초창기 자베즈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대유는 자베즈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6일 만인 2012년 11월22일 공시를 통해 "자베즈 제2호 투자회사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출자하기로 한 돈은 400억원. 2012년 말 기준 자산 총액(3857억원)의 10%가 넘는 규모였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자베즈는 계약금 성격의 이행보증금 60억원을 낼 여력도 없었다. 박영우 대유그룹 회장은 조카 박신철씨가 대표로 있던 자베즈에 이 돈을 빌려준다. 대유는 2013년 5월2일까지 4차례에 걸쳐 400억원을 출자했다. 바로 다음날 그린손보는 'MG손해보험'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하지만 대유는 불과 3개월 만에 새마을금고에 투자금을 처분하고 펀드에서 발을 뺀다. 대유는 공시 자료에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현금 유동성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이유를 댔다. 400억원을 투자한 대유가 손에 쥔 투자 수익은 불과 8억7000만원이었다. 반면 같은 돈을 투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연금재단은 1년 후 40억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대유가 인수전에 뛰어든 목적이 단순한 투자수익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역 확대'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MG
 
큰 손은 따로 있었다. 사모펀드 총액 1800억원 가운데 400억원을 투자한 새마을금고중앙회다. 다른 투자자들에게 '연 6.5% 수익률을 보장할 테니 믿고 투자하라'고 종용한 것도 새마을금고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듯 그린손보의 새로운 이름 앞에는 새마을금고를 뜻하는 'MG'가 붙었다.
 
새마을금고는 현행법상 보험업에 진출할 수 없다. '금융기관이 아닌 내국 법인은 보험사 대주주가 되려면 부채비율이 300%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도 사업 구조상 맞추기 어렵다. '2015 새마을금고 통계' 자료를 보면, 47조2049억원(2014년 말 기준)에 이르는 새마을금고중앙회 자산 가운데 자본 총액은 1조4324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5조7735억원이 부채다. 중앙회 관계자는 "회원 자금으로 운용해서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보험사를 소유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는 수년 전부터 보험업 진출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을 분리하도록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회원을 대상으로 생명·손해 공제 사업을 하는 새마을금고로서는 변화에 대비해야 했다. 손보사를 품안에 두면 이 같은 파고를 넘을 거란 계산이 섰을 수도 있다. 사모펀드를 내세워 우회적 인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자베즈는 몇 년 뒤 상장을 하면 기업 가치를 높이면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고, 새마을금고는 투자자로서 이익을 얻으면서 향후 손보업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며 "인수전을 보면 자베즈와 새마을금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약속에 수백억원 맡긴 투자자
 
새마을금고중앙회는 MG손보 출범 이후 대유가 투자한 400억원을 시작으로 다른 투자자 돈을 야금야금 흡수했다. 자베즈란 사모펀드 우산 아래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연금재단(400억원), 교원인베스트(300억원), 하나은행(200억원)의 투자 지분을 사들였다. 미리 짜인 각본처럼 진행됐다. 새마을금고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연간 6.5% 수익률을 보장하고, 나중에 지분을 사들이겠다는 약정을 내걸었다. 금감원이 지난 5월 자베즈에 징계를 내린 이유다.
 
사모펀드 투자자들에게 '수익 보장'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고, 자칫하면 원금까지 날릴 수 있다. 원금은 물론 수익까지 보장된 거래는 투자보다 대출에 가깝다. 자베즈 사모펀드에 400억원을 투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연금재단은 지난해 10월 출자금을 회수하며 투자 수익으로만 37억2000만원을 챙겼다. 이미 약속된 이자였다.
 
하나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은행은 자베즈 사모펀드가 조성될 무렵 '공개할 수 없는 선'을 통해 투자 의향 제안서를 받았다. 하나은행이 2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낮은 위험성이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미 새마을금고에 투자 지분을 넘겨 거래가 끝난 사안"이라면서도 "보통 제안서를 보고 경제성·위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MG손보 건은 투자 위험이 낮았다"고 말했다.
 
교원그룹 계열사로 직원 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교원인베스트는 자베즈 사모펀드에 300억원의 거금을 선뜻 투자했다. 2012년 말 자산 총계 60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었다. 교원은 300억원을 유상증자해서 자베즈에 몰아줬다. 교원은 이미 자베즈와 손잡은 경험이 있다. 현대증권 지분을 사들이며 2대주주로 떠오른 '자베즈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에 29억원을 투자했다. 이때 형성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수익이 약속된 거래는 자산 절반에 이르는 유상증자를 가능케 했다. 교원 역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올 초 회수를 끝냈다.
 
대유가 판을 깔고, 새마을금고중앙회가 키우고, 투자자들이 숟가락을 얹으면서 10억원의 종자돈은 1800억원의 판돈이 됐다. 투자자 면면은 화려했지만, 속내는 제 각각이었다. 자베즈에는 이들을 묶을 수 있는 특수관계 혹은 이해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정권 핵심부일지 모른다.
  
최병호·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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