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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어떤 예술은 오늘도 죽어가고 있다
2015-06-29 06:00:00 2015-06-29 06:00:00
얼마 전 대학로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한 극단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최근 본 극단 중에서는 꽤 풍족한 편에 속했다. 연습실이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해 습기로부터 자유로웠고, 배우들이 움직일 만한 공간도 확보되어 있었다. 다른 극단의 경우는 대부분 이보다 열악하다. 연극계에서 꽤 유명세를 타는 극단의 경우에도 그렇다. 심지어 앉아서 회의만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쪽방에서 리딩 중심으로 연습을 진행하다 무대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가 이 극단 전용 연습실이냐"고 물어보니 쓴 웃음과 함께 "당연히 빌린 공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다. 티켓이 꽤 잘 팔리는 연극이어서 잠시 다른 기대를 했었다. 생각해보니 연습실이 쾌적한 경우에는 연습실 운영 주체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연습실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은 가장 쾌적하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공영(?) 연습실에 신청서를 넣었다가 떨어지면 사설 연습실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시간대별로 연습실을 옮겨다니며 '메뚜기 뜀 뛰는' 사례도 흔하다. 연극배우들 중에는 연습실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연습실을 빌려주며 생활비도 벌고 필요할 때 개인 연습도 하는 등 좀더 우아하게 배우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극단의 연습실에서 들은 얘기를 하나 더 소개할까 한다. 배우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은 것인데 얼마 전 사망한 1975년생 연극배우 김운하(본명 김창규)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운하 배우의 부고 이후 지인들이 '너는 괜찮냐'며 자꾸 안부를 물어온다"며 "남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풍족해보이는 연습실에서, 나름 찾는 사람이 있는 예쁘장한 젊은 여배우들이 나누는 대화가 이렇다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배우 김운하의 죽음 이후 예술인 복지법에 포커스를 맞춘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예술인 복지법은 중요하다. 연극인 역시 시민이자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복지법만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인 복지법은 수많은 해법 중 하나일 뿐이지 만능해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논의와 세밀한 대책 모색에 대한 의무를 방기한 채 '말하기 쉬운 것'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프레임은 더 넓어져야 한다. 차근히 첫 단추부터 꿰어야 한다. 먼저 질문부터 던져보자.
 
때로는 목숨을 위협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극인들은 왜 연극을 하는 걸까. 연극인들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며 연극예술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서 연극이 갖는 위상만큼 왜 국내에서는 그 위상이 높아지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연극배우 출신은 사랑하면서 연극배우는 사랑하지 않을까. 국내에서 연극배우는 그저 영화나 TV 산업의 풍요로운 인맥풀로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질문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어떤 예술들은 오늘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김나볏 문화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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