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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떼고 포 떼고 지방자치는 '축소'..중앙이 다 해 먹는다?
정부,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 윤곽..지자체 권한 줄이는 내용도
특별·광역시 기초의회 폐지 및 구청장·군수 임명제 등 논란 예상
2015-01-29 11:33:22 2015-01-29 11:33:22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단단히 뿔났다.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의지가 후퇴하는 것도 모자라 행정권한을 축소하고 예산을 줄이자는 이야기까지 나와서다.
 
29일 국회와 행정자치부,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특별시와 광역시 기초의회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조만간 확정한다.
 
현재까지 정부가 설명회 등을 통해 알린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은 ▲지자체 자치경찰제 도입 ▲지방선거제도 개선 ▲지방재정 확충 ▲중앙정부 권한 지방 이양 등 20개 세부과제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중앙 정부의 힘을 빼고 지자체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세부과제를 자세히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별·광역시 기초의회 폐지와 광역시·구청장·군수 임명제 도입, 책임 읍·면·동제 실시, 긴급재정관리제 시행 교육감 선출방식 개선 등 실제로는 지자체의 힘을 빼는 내용이 다수 담긴 탓이다.
 
우선 특별·광역시 기초의회 폐지는 특별시와 광역시가 지자체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단을 봉쇄할 우려가 있다. 당장 특별·광역시의 과세권을 제한할 소지가 크다.
 
광역시 구청장·군수 임명제는 파장이 더 크다. 구·군민들은 지자체장을 더이상 직접 뽑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1994년 도입된 지방자치제도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기초행정단위인 '동(洞)'을 묶어 '대동(大洞)'으로 만드는 책임 읍·면·동제도 쉽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제도는 정부가 지자체의 자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검토되지만 실제로는 생활밀착형 자치가 실종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지방자치는 지방이 지역특성을 고려해 읍·면·동을 자기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한 것"이라며 "책임 읍·면·동제는 지자체에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 지역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가운데)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인 조충훈 순천시장(오른쪽), 박성민 울산중구청장(왼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에 대한 전면 철회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News1
 
이런 가운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교부세 등의 개혁을 언급하자 지자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반발한다. 가뜩이나 지자체의 재정이 열악한 상황인데 지자체 운영의 핵심인 예산을 줄이면 중앙 정부에 대한 예속만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고령화 등으로 증가하는 복지수요의 크기가 지방교부세 배분기준에 제대로 반영되는지 살펴야 한다"며 "교육재정 교부금도 학생 수가 감소하는 등 교육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 교육재정 교부금이 오르는 현행 제도가 과연 계속 유지돼야 하는지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은 41조6000억원, 지방교부세는 34조2000억원다. 국세 수입 중 75조원 정도가 지방재정 지원으로 나가는 셈인데, 박 대통령은 이를 줄여 누리과정(만 3~5세 보육료 지원) 등에 쓰겠다는 것.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지자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013년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에 불과하고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8대 2일 만큼 지자체의 재정이 열악한데 교부세 재검토는 지자체 재정에 치명타라는 주장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는 "연말정산 대란과 서민증세 논란 등으로 정부가 서민 호주머니를 턴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제 지자체 예산까지 뺏으려 한다"며 "재정효율화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교부세 전면 재검토는 지자체에 파산선고"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박근혜정부가 지자체의 공분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의 기본원칙을 흔드는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이나 지방재정을 악화시킬 교부세 재검토는 물론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지역개발 종합계획에서도 국토균형발전 의지가 후퇴한 모습이 확연했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개발 종합계획을 봐도 2018년까지 총 165조원을 투입해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획은 거창했으나 실제로는 이미 역대 정부에서 추진한 지역발전 계획만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에 그쳤다.
 
더구나 참여정부가 혁신도시 건설을 내세웠고 MB정부가 5+2 광역경제권과 30대 지역 선도프로젝트 발굴을 추진한 것과 달리 이번 정부는 지역경제 육성에 대한 대안도 전무하다.
 
이에 한국지방정부학회 관계자는 "역대 정부는 지방을 살리겠다며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구성,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법 제정 등을 추진했으나 실제로 지방 살리기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박근혜정부는 역대 정부 중 지방 살리기 의지가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데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방 지지층의 이탈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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