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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각지대, 육성선수)①계약기간 무색하고 최저연봉 규정 없어
2015-01-30 10:05:39 2015-01-30 10:05:39
[뉴스토마토 이준혁·임정혁기자] 최근 <뉴스토마토> 보도로 알려진 KT위즈의 육성선수(옛 신고선수) 무단 방출과 연봉 미지급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들은 구단과의 관계에서 절대 약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나 인권 침해에 대항할 아무런 힘이 없었고, 정식 선수가 아니어서 누구도 이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에서 이들이 겪은 일들은 일반 시민들은 물론 야구계 사정을 제법 안다는 내부 인사들조차 경악할 수준이었다. 다행히 KT는 이 문제가 공론화된 뒤 방출된 신고선수 19명의 미지급 연봉을 지급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걸까? KT가 아닌 다른 구단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종목들은? 국내 프로스포츠계의 육성선수·번외지명선수·수련선수 등, 절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3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는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 참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퓨처스리그는 대다수 야구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경기장도 다수 야구팬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한다. 서울경찰수련원 야구장(경기도 고양시 내유동)에서 2014년 진행된 경찰야구단과 KT의 퓨처스리그 경기. (사진=이준혁 기자)
  
지난 시즌 이후 국내 대다수 프로야구 구단들은 주요 FA(자유계약선수)를 잡기 위해 화끈하게 돈을 풀었다.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4년 총액 80억원 이상 계약을 맺은 선수가 3명이나 나오며 역대 FA 계약 총액의 1~3위가 모조리 바뀌었다. 뒤이어 50억~65억원 계약을 마친 선수도 3명이 나왔다. 결국 FA 자격을 얻은 19명의 계약 총액은 총 630억6000만원에 달했다. 이전 시즌에 FA 자격을 얻고 계약을 체결한 16명의 계약 총액 합계인 523억5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에는 이런 고액의 계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적 수준의 돈 잔치 이면엔 스타급 선수와 비교 불가능하게 미미한 돈을 받는 수많은 선수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육성선수'로 부르고 있고, 우리가 흔히 '신고선수'로 부르는 선수들이 그들이다.
 
최근 <뉴스토마토>는 올해부터 1군 리그에서 경기하는 KT위즈 소속 신고선수의 무단 해고와 계약연봉 미지급 사연을 보도해 야구계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어진 취재결과 육성선수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은 비단 KT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는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 참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퓨처스리그는 대다수 야구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경기장도 다수 야구팬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한다. 화성베이스볼클럽(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서 2014년 진행된 화성(넥센히어로즈 2군)과 LG의 퓨처스리그 경기. (사진=이준혁 기자)
 
◇작년 신고선수 246명..최저연봉 규정도 없어
 
국내 각 프로구단은 시즌 개막 전에 구단이 개별 선발한 신고선수를 KBO에 알린다. 신고선수는 한동안 1군 경기에 참가하지는 못하나 2군 경기인 퓨처스리그 경기에는 곧바로 참가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즌 개막 직전에 KBO가 집계한 신고선수 숫자는 246명(KT 포함)이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다다. 등록선수의 엔트리 구성 제한이 65명인 걸 감안하면 4개 프로야구단 구성이 가능한 정도다.
 
이렇게 이들의 수는 늘어났지만, 처우에서는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지난해 처우가 더욱 열악해진 대목도 있다.
 
신고선수는 등록선수와 달리 KBO가 규정한 프로야구 최저연봉을 보장받지 못한다. 올해 등록선수가 받는 최저연봉 금액은 2700만원인데 신고선수는 이같은 최저연봉 규정이 없다. 구단이 임의로 정하면 그만이다.
 
각 구단들을 취재해보니 대다수 구단은 2000만원 전후로 신고선수 연봉을 책정했다. 하지만 2000만원 미만도 적잖았다.
 
더 큰 문제는 정해진 계약기간 조차 없다는 점이다. 통일계약서 계약을 통해 2~11월로 규정되는 등록선수와 달리 신고선수는 구단이 단기 계약·수시 해약 등을 할 수 있다.
 
등록선수는 야구규약 5장 등에 따라 1989년 3월8일 정한 통일계약서 양식에 기초해 계약해야만 한다.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선수별로 각종 특약조항은 기입할 수 있지만 통일계약서 기본 골자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신고선수의 계약은 통일계약서 양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 편의상 통일계약서 양식을 활용하지만 해약이 구단의 의사에 따라 수시로 가능하다는 등의 독소조항을 덧붙여 넣는 경우도 적잖다. 이번에 논란이 된 KT의 경후 방출 이후 잔여연봉에 대해 미지급을 명문화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잔여연봉 미지급을 계약에 포함한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신고선수의 보류권이 도입되는 등 규정이 개악되기까지 했다. 보류권은 구단의 독점적 보유권을 의미하는 용어다.
 
지난해 1월14일 개정된 규약 47조엔 그해 시즌 종료 후인 11월25일까지 KBO에 구단이 다음 시즌 팀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 신고선수 명단을 통보하면 해당 선수는 국내의 다른 구단과는 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정식계약을 맺은 등록선수에게만 적용된 조항이었다.
 
신고선수는 드래프트 절차로 선발한 선수가 아니라 계약과 해약도 상당히 자유롭다. 그런데도 시즌 이후의 이적도 차단을 한 것이다.
 
◇KT위즈가 지난 2013년 9월25~27일 수원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2013년도 공개 트라이아웃을 개최했다. 이들은 체력 측정과 실기 테스트를 시작으로 투수 지원자는 하프피칭, 야수 지원자는 펑고와 배팅 테스트를 받았다. ⓒNews1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파리 목숨"
 
프로야구 선수의 근로자성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도 논란꺼리다. 생활 방식과 각종 상황을 고려하면 근로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현행 법규로 보면 이들은 개인사업자다.
 
법인인 프로야구단과 개인사업자인 선수와의 계약은 다른 직업에 비해 자유롭다. 이런 가운데 보호장치가 전혀 없고 팬들에게 주목도 받지 못하는 신고선수를 갑작스럽게 방출하는 것은 야구계에 비일비재한 일이다. 심지어 계약서상에 수시(불시) 해약과 잔여 기간 계약금 미지급 등을 명시한 구단도 있다.
 
비수도권 A구단에 신고선수 형태로 입단했지만 해외 전지훈련 도중 인대손상으로 재활기간 도중 방출통보를 받은 한 선수의 딱한 사연은 국내 신고선수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군 입대 전 수도권 구단에서 방출된 B 선수는 전역 이후 신고선수 테스트를 통과해 신고선수 신분으로 A구단 소속 선수가 됐다. 그렇지만 시즌 전 해외 전지훈련에서 훈련 도중 인대손상 부상을 입었다.
 
결국 그는 이후 3개월 동안의 재활 과정을 거쳤음에도 재활은 실패로 끝났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경과 소견이 나왔다. 그러자 구단은 이 선수를 잔여연봉 지급 없이 방출했다. 계약서에는 수시 해약과 잔여 기간 계약금 미지급 여부 등의 내용은 없었다. 게다가 B 선수는 수술비 등 모든 치료비를 스스로 내야했고, 현재 아무런 직업 없이 다른 일을 찾는 중이다.
 
B 선수는 "훈련장에서 훈련 도중에 당한 부상이었다. 개인적으로 놀다가 혹은 전지훈련 기간이라도 휴식일에 숙소 밖에서 다쳤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수술비도 내가 모두 지불했다. 이제 어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단이 지난 26일 미지급 잔여연봉을 전액 지급하기로 했다고 연락을 해왔다는 점이다. <뉴스토마토> 보도로 야구팬들이 육성선수의 처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구단이 발빠르게 대응을 한 것이다.
 
다른 비수도권 C구단에서 신고선수로 소속됐다 방출당한 D 선수는 "많은 돈은커녕 먹고 살기 충분한 돈도 받지 못한다는 점과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 점은 분명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언제 해약 당할지 몰라 삶의 장기계획을 전혀 세울 수 없단 점"이라며 "선수생활 도중 그게 제일 두려웠다"고 말했다.
 
◇2013년 11월20일 KT위즈가 83일간의 해외 전지훈련을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직전 사진촬영을 했다. 최근 방출 신고선수 잔여 연봉 미지급 논란을 제기한 선수 2명은 출국 당일에 계약을 맺고 출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준혁 기자)
   
◇육성선수 처우 개선 논의 본격화
 
<뉴스토마토> 보도 이후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섰던 KT는 문제를 제기한 해당 선수 6명은 물론이고 다른 방출 신고선수 13명에게도 잔여 계약금 전액을 주기로 했다. KT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다.
 
프로야구 선수의 처우 개선을 위해 모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앞으로 이같은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알렸다.
 
KBO도 프로야구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합당한 대접을 받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육성선수 통일계약서 제정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정균 KBO 운영팀장은 "KBO가 규정한 통일계약서는 등록선수에겐 맞지만 육성선수의 현실엔 맞지 않는 면이 일부 있어 그동안 KBO도 육성선수에 맞는 전용 통일계약서 마련을 고민하던 차였다"면서 "여러 사정상 조금 늦어진 감이 있는데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곧 육성선수 실정에 맞는 통일계약서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KBO는 등록선수의 선수계약 승인신청을 규약상 '1월31일'까지 받는다. 그렇기에 구단들은 보류권을 행사한 육성선수 다수도 이 기간에 맞춰 계약하고 있다. 덕분에 육성선수 다수는 이미 계약을 체결하고 일부는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논란이 불거졌다고 급하게 계약 제도를 바꾸기보다 누구나 수용 가능한 통일계약서를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고선수는 처음에 '연습생'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판이 커진 프로야구계에서 이들은 리그 운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언제든 미래의 스타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과거 장종훈(한화·현 롯데 코치)을 시초로 박경완(쌍방울-현대-SK·현 SK 육성총괄), 손시헌(두산-NC), 이종욱(현대-두산-NC), 김현수(두산), 이지영(삼성), 서건창(LG-넥센) 등이 모두 신고선수에서 스타 선수 반열에 오른 사례다. 이제 이들은 고액 연봉을 받고 있지만 한때는 적은 연봉을 받으며 미래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한 야구전문가는 "신고선수는 리그의 발전을 위해 함께 해야 할 동반자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팬들도 이같은 시선으로 야구계의 변화를 지켜보는 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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