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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한국 자본주의 고쳐쓰기
2014-10-31 08:44:58 2014-10-31 08:44:58
<한국 자본주의>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펴냄
 
책 <21세기 자본>을 내논 피케티를 비롯해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 자본주의의 향방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세계를 아우르는 경제사상의 흐름이 보다 근본적이고도 역동적인 쪽으로 변화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들의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 공허한 게 사실이다. 세계 차원의 논의를 들여다 본들 ‘그래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위한 좀더 세밀한 지도, 가이드 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하성 교수의 최근 저서 <한국 자본주의>가 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장 교수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려운 것은 시장경제가 뒤죽박죽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그 칼 끝을 재벌에게 겨눈다. 계획경제체제의 유산으로 발전한 재벌이 어떻게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고쳐 쓰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이 책의 장점은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주장이 그저 한 학자의 원론적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벌 중심인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상세하고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는 점, 보수와 진보 사이 경제 논쟁의 스펙트럼을 명확히 분류해 펼쳐보인다는 점, 국내에서 시도된 다양한 경제정책의 성과와 실패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 등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다독할 가치가 있다. 저자가 제시한 정의로운 경제 만들기 방법의 실현 여부는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장하성 솔루션의 실천 주체가 다름 아닌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전문성 :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5대 기업개혁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국가 경제정책 설계에 두 차례 참여해 본 저자의 경험이 이 책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실천적 지평까지 넓힌다.
 
▶대중성 :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 경제의 어제와 오늘을 참으로 진득하게 써내려간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보니 평소 독서량이 짧은 독자는 읽다 지칠 수도 있다. 책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1부와 3부를 먼저 읽으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책에 대한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논의의 도입부인 1부와 재벌의 속속들이를 해부하는 2부를 오가며 읽다가 3부로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참신성 : 한국경제가 워낙 뒤죽박죽으로 흘러온 때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참신성은 정확한 관점에서 나온다. 가령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 논쟁, 소버린의 ‘SK 경영권 분쟁’ 논쟁,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술 먹튀’ 논쟁에 대해 분석하면서 애국주의자들에게 ‘불편한 진실들’을 알리는 대목이 그렇다. 범법자인 재벌 총수와 경영진은 뒤로 한 채 기업의 편에서 ‘외국인 먹튀’ 논란 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지적이 새롭게 다가온다.
 
■요약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시위에서부터 국내의 경제민주화 화두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래 지속가능한 경제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학자들 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를 버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마저 나온다. 지난 수십년 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자본주의가 경제 정의에 역행한 결과, 성장마저 지지부진해진 까닭이다.
 
한국 역시 ‘자본주의를 버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악화되는 소득 불평등, 확대되는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 등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적신호들은 타국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하성 교수는 신간 <한국 자본주의>를 통해 이 ‘서구보다 훨씬 심각하고 다양한’ 이상신호에 주목하고 나름의 입장에서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일단 특별한 대안이 없는 상황인 만큼 자본주의를 버리기보다는 고쳐 써야 할 때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구분하고,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부터 제대로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존폐를 논하는 것보다 시급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장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기업과 가계의 불균형 성장’에 주목하고, 이것이 ‘계획경제체제의 유산’임을 증명하며, ‘재벌 문제’를 논의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아울러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재벌에게 넘어간 것이며, 이를 규제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는 게 한국 경제의 핵심문제 중 하나라고 일갈한다.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재벌의 행태들도 세세하게 나열된다. 그 중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들이 지난 10여 년 이상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내든 해외시장에서든 주식으로 투자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내부 유보금만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명확하다.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경영 상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자금 조달 목적을 설명하는 등 시장에서 검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식을 발행하면 할수록 총수 지분이 축소되고, 경영권 장악도 약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재벌이 주식 발행을 꺼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이후 기형적인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을 논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실천가능성을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저자가 피케티의 자본세 논의에 대해 반만 동의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실천가능성의 희박 때문이다. 저자는 이념적 좌표를 넘어서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현실화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한국에 이미 그런 전문가가 많다는 것을 600페이지가 넘는 자신의 대작으로 직접 증명한다. 그리고서 촘촘한 논의를 거쳐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현실로 만들도록 필요한 것은 결국 국민의 투표'라는 결론을 내린다. 시장의 질서를 바꾸는 것은 시장이 아닌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도 곁들인다. ‘계급 투표’와 ‘기억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자는 게 한국 자본주의를 향해 장하성이 던지는 실천적 해법이다.
 
■책 속 밑줄긋기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서 외부에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내부유보를 쌓아서 투자 자금으로 쓰고자 한다면
이것은 새로운 주식이나 채권 발행에 따른 시장의 감시와 견제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제적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 평등한 정치적 참여는 공허하다.”
 
“소득 불평등, 양극화, 중산층의 몰락, 고용 없는 성장, 임금 없는 성장,
가계 살림의 붕괴, 질 나쁜 일자리 양산, 청년 세대 실업 등
체제 자체가 위험할 정도로 모순과 긴장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재벌 문제, 노사 갈등, 지역 간 불균형, 노령화, 교육 붕괴,
저출산율과 고령화, 노인층 빈곤,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
다른 나라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한국에 총집합시켜 놓은 양상이나 다름 없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에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면,
개개인의 이념적 좌표를 넘어서 이를 현실화할 정책을 만들
역량 있는 전문가들은 한국에 많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투표’가 ‘돈’을 이겨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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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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