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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공화국)⑤선진국 산재정책은 '그림의 떡'..법제화 난망
산재 입증은 근로자가..모든 건 근로자 부주의 탓
2014-05-26 13:53:36 2014-05-26 16:26:55
[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1987년 영국에서 발생한 제브류헤(Zeebrugge) 여객선 침몰은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법제 개혁'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이후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가 내논 요구안과 같다. 그러나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논 카드는 '내각 개혁'. 이때문에 '장관 목만 날아갈뿐' 근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세월호 참사이후 민주노총이 내논 6대 우선 요구안중 하나로 '기업살인법 제정'이 포함됐다.ⓒNews1
 
기업에 과실치사 등 형사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리는 1944년 영국에서 처음 인정됐다. 임원이 '기업으로서' 내린 결정을 기업의 '범죄의사'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1987년 제브류헤 여객선 침몰로 193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국은 정작 해당 법리를 근거로 책임 회사(P&O European Ferries)를 기소할 수 없었다.
 
P&O에 대한 대대적인 공개조사 및 심문이 필요하다는 영국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과정에서 기소 실패는 기존 법리 개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2007년,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 통과됐다. 193명의 희생자를 낸 제브류헤 여객선 침몰 사건이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사회적 결실을 맺은 것.
 
기업살인법은 기업의 안전조치 미숙 등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에게 범죄 책임을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통상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산재 유발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정도의 심각성에 따라서는,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영국은 OECD국가중 산업재해사망자가 10만명당 0.6명으로 가장 적은 수준을 자랑한다. 2010년 기준으로는 0.71명으로, 슬로바키아(0.37)와 네덜란드(0.49) 다음으로 유럽 3위다.
 
영국에서 2012년~2013년 동안 산재가 잦은 주요 7개 업계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자수는 571명. 서비스업계에서 452명으로 가장 많았고, 건설업 44명, 농업 36명, 제조업 21명, 가스·전기·수도업 등에서 16명, 탄광업 등에서 2명 등이다.
 
특히 기업살인법이 도입된 2007~2008년이후 하강세는 더욱 강해졌다.
 
◇영국 산재 발생 추이('93년~'13년).(출처=영국보건안전청(HSE))
 
업계별로는 5년 전과 비교해 농업(11.1→8.8명), 탄광업(6→2명), 제조업(0.9→0.7명), 건설업(2.3→1.9명) 등 3개에서 특히 두드러진 개선이 이뤄졌다.
 
같은 기간, 한국의 2013년 10만인율은 7.1명. 영국에 견줘 10배가 넘는다. 영국에서 생산된 통계에 자살 등 사고까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격차는 더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기업살인법이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12월24일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 등 11명은 '기업살인처벌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2월14일 국회에 상정돼 논의됐지만, "제정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환노위에서 계류중"이라며 "병합 심사가 필요하다"는 결과보고서만 내논 채 일단락 됐다.
 
회의 당시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은 "'살인'이라는 표현은 극히 지나치고, 현행 형법체계와도 맞지 않는다"며 기업살인법의 도입을 적극 반대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도 "기업살인처벌법안이 사업주 책임 범위를 너무 과도하게 확대하고 있고, 처벌 수준도 지금 형법상의 형량보다(도) 조금 높은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어 과도하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더욱이 "기업살인법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산재(보험금)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사고를 낸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며 "근로자들의 직업윤리를 의무(적으로) 법에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방 장관에 요구했다.
 
방 장관이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 관감하는 부분이 있다"며 "검토하겠다"고 답하자, 이 의원은 "검토해서 다음에 정부안으로 제출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적극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산재에 대한 책임을 '근로자의 윤리 문제(모럴해저드)'로 떠넘기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더 이상 산재를 근로자의 안전불감증이나 모럴해저드 문제로 귀결 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정책 대학원에서 환경법을 가르치고 있는 A 교수는 이완영 의원의 발언과 관련 "산재피해자가 겪는 후유증과 고통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라며 "현행법상 산재 입증 책임을 근로자에 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과 근로자 간 정보 격차가 어마어마한데다, 사실상 근로자의 노동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사업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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