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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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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입니다.
남성 아이돌이 'MeToo'를 웃으며 외치면 안되는 이유

2019-10-28 18:24

조회수 :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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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앞서, 저의 짧은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도 말이 아닌 글로 이런 이야기를 적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12살, 엄마가 준 돈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복작거리고 좁은 시장 골목을 걸어오는 길에 얼굴이 술에 벌겋게 익은 노인과 어깨를 부딪혔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빠르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는데, 그 노인은 저를 보며 씨익 웃더니 제 엉덩이를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네가 예뻐서 그랬나보다"라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의문이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예쁘다고 제 엉덩이를 함부로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살,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밤 늦게까지 종합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10시 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사이 골목으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푯말은 붙어있지만 막상 밤이 되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으슥한 길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없이 MP3로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죠. 길 중간쯤 왔을까요. 갑자기 뒤에서 제 몸을 덥썩 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방금 전 대로변에서 헤어진 친구인 줄 알고 웃으면서 "장난치지마라"고 했지만, 제 치마속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손을 느낀 뒤엔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필사적으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온 몸을 비틀었고, 등에 매고 있던 커다란 책가방 덕분이었는지 뒤에 있던 남성은 비틀거리며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갈 때까지, 경비원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길을 단 한 번도 혼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때보다 훨씬 더 키도 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외에도 호프집 아르바이트 도중 술에 취한 중년 남성에게 "남자친구 없으면 나랑 애인 사이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기도 했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여기자들은 특종을 얻기 위해 높은 직급의 상사와 성적인 관계를 하기도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이야기를 말했을 때 대부분의 여성들은 제 이야기에 공감하며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라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제 인맥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닌데, 제 주변에는 참으로도 이상하게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SNS 상에서도, 언론에서도, 방송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 사건이 1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들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네, 이것은 저만의 '미투'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다른 피해자들은 선생님에게, 선배에게, 상사에게, 심지어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차라리 낯선 사람에게 그런 수치를 당했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입니다.
 
최근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이 미투를 가지고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가 공식 팬카페에 사과문을 남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팬사인회 도중 한 멤버가 다른 멤버의 가슴에 마이크를 대며 "(젖)꼭지씨 말씀하세요"라고 말을 하자, 다른 멤버가 손을 들며 "미투, 미투"라고 외치며 웃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미투'는 그렇게 장난처럼 소비되는 일이었나봅니다.
 
남성들이 '미투'를 가볍게 소비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투 운동을 가열차게 해서 좌파가 더 많이 걸렸으면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뮤지컬 배우 김태훈씨는 팬과 사진을 찍는 행사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투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했다가 출연 중인 작품에 하차하기도 했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지 2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미투' 희화화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미투'를 농담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의 사과문엔 대부분 '악의 없이', '의도치 않게'라는 말을 씁니다. 단순한 무지로 이뤄진 해프닝이라는 것이죠. 그렇게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제 안에 불편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12살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렸던 그 취객도, 교복을 입고 집에 가던 여학생의 치맛속에 손을 넣던 그 남자도 그런 말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미투'를 쉽게 입 밖으로 내뱉는다는 것, 그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떠벌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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