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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연

WTO 개도국 포기, 미국과 대치시 자동차 불이익 커

농업협상 예측 어려워 피해 불확실…현재 수준 관세·보조금 유지 어려울 듯

2019-10-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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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한국이 앞으로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기로 한 것은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WTO 이후 협상은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는 만큼 농업부문 피해는 불확실성이 큰 데 비해 개도국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대치하는 모양새를 띠게 돼 불이익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정부 조치로 미국이 다음달 14일을 시한으로 예고한 '자동차 232조'에서 한국 제외 요청이 한층 힘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향후 재개될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한 만큼 현재 수준의 관세와 보조금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부는 향후 농업분야에서 최대한 유연하게 협상을 끌고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전제로 깔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만큼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 기존 협상에서 확보한 특혜를 유지할 수 있다"며 "미래 협상에 따라 발생하는 영향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부터 개도국을 선언한 이후 지난 2004년까지 한국에 부여된 관세와 보조금 감축 이행 의무를 모두 끝냈다. WTO 회원국 스스로 선언하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한국의 이행계획서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추가 관세 인하 등은 없다.
 
문제는 미국이 WTO 개도국 지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현재 WTO 내 협상 중인 수산물 협정에서 중국이 개도국이라는 이유로 예외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어획 비중이 가장 큰 중국이 포함돼야 협정에 실효성이 생긴다는 입장이다.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세계은행(WB)에서 분류한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무역 비중 0.5% 이상 국가 등 4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WTO 개도국 지위를 내려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개도국이어서 부담이 컸다. 앞서 대만,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은 개도국 지위를 내려놨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이 계속 개도국으로 남을 경우 중국과 인도가 한국을 핑계로 댈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자칫 미국 대 중국 구도가 미국 대 한국 싸음으로 전환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대립구도에 따른 농업부문 피해는 예측 가능하기 어려운 반면 다른부문의 피해는 비교적 분명하다. 자동차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자국 안보를 이유로 수입 자동차에 최대 25% 고율 관세를 매기는 조치를 내달 14일까지 결정한다고 밝힌 상태다.
 
이날 결정에 앞서 지난주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면담해 WTO 개도국 문제를 논의하고 한국의 자동차 232조 적용 제외를 요구했다.
 
지난달 24일 귀국한 유 본부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고 만나 "미국은 현재와 미래 협상에서 한국이 더 이상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며 "개도국 문제에서 한국 농업의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232조 적용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의 영향으로 한국이 제외될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WTO 개도국 관련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런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다만 향후 재개될 수 있는 농업협상에서 국내 농업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행사할 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결국 농업을 죽이는 일"이라며 정부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차기 협상에 따라 보조금과 관세가 언제 어떻게 감축될지에 따라 우리 농업을 보호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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