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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분묘기지권, 재산권 침해인가 존중할 관습인가

22일 대법원 공개변론 열려

2016-09-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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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분묘기지권은 자기 땅에 들어선 타인의 묘를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는 권리를 뜻한다. 분묘기지권이 재산권 침해인지 자기 조상을 위해 존중해야 할 관습인지를 두고 22일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은 A씨가 지난 2011년 12월 자기 토지에 있는 묘 6기를 관리하는 B씨에게 묘의 자리를 옮기라고 낸 소송 내용을 대법원이 전원 합의체에 부치며 열렸다.
 
1심과 항소심은 6기 가운데 5기에 대해 분묘기지권 취득시효를 인정했다. A씨는 취득시효를 이유로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분묘기지권을 폐지하는 쪽으로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며 상고했다.
 
그간 대법원은 취득시효가 완성되면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판례를 유지했다. 20년간 분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토지소유권을 인정해 타인이 분묘를 처분하도록 허용하면 분묘를 통해 조상을 위하는 가치관을 지닌 우리 민족 정서와 맞지 않을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토지 소유자의 사유재산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며 분묘기지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반대 측 논리도 팽팽했다. 이후 분묘기지권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날 의견이 갈리는 두 측의 법정 다툼도 치열했다. 원고 A씨 측 최문수 법무법인 오늘 변호사는 "분묘기지권은 분묘 무단설치자를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정당한 토지소유자를 무한적으로 침해한다. 또 분묘라는 특정 시설에 국한된 차별된 보호"라고 강조했다.
 
반면 피고 B씨 측 조홍준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대부분 국민은 여전히 분묘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가진다. 현재 국민은 대법원이 인정한 분묘기지권을 존중한다"며 분묘기지권 폐지 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조장될 수 있다. 국민 인식과 동떨어진 관습법 폐지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인 측도 격론을 벌였다. 분묘기지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피고 측 참고인인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묘기지권 시효취득은 법규에 이를 배제하는 명문규정이 없으면 인정돼야 하고 인정할 실익도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제한물권인 시효취득은 토지소유자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배제하는 것은 옳을 수 있으나 이때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시효취득을 인정해야 할 현실적인 이익도 있다. 특히 진정한 소유가 아닌 소유명의자 또는 처분 권한이 있다고 믿은 사람으로부터 분묘기지권을 취득해 분묘를 설치한 사람 등에 대해선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분묘기지권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사설묘지, 개인묘지의 폐지다. 하지만 이는 입법론에 속하는 사항으로 법원 권한 밖의 일"이라면서 "분묘기지권의 정리와 해결을 위해 조급증을 버리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장례 의식의 추이와 장묘문화의 변화를 지켜보는 인내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반면, 분묘기지권 폐지를 주장하는 원고 측 참고인인 오시영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조선고등법원 판결 당시인 1927년에는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이 없었다. 설령 당시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그러한 관습은 소멸했다고 할 것이므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온 종래 판례들은 폐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에 분묘기지권 판결을 받은 분묘에 대해 이 판결의 소급효를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구 장사법 시행일로부터 15년의 존속기간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3회에 걸친 15년씩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종중원 자격을 성인 여성에게 인정한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맞게 소급효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관습상의 분묘기지권에 관한 종전 판례는 폐기돼야 마땅하지만, 분묘기지권자의 조상에 대한 숭모의 마음이 분묘 이굴에 따른 정서적, 심리적 충격이 최소화될 수 있는 지혜도 함께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인 진술 후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 교수에게 "조상 분묘를 수호하는 것은 현재에도 미풍양속으로 남아 있다. 상당수가 관습법상 분묘일 것인데 이를 이장 또는 철거하도록 한다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물었고 오 교수는 "일시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는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 그동안의 이득을 고려할 때 분묘기지 점유자가 분묘개장의 따른 비용은 감내해야 할 것이고, 개장비용이 5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에 불과해 과다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양 대법원장은 이 교수에게 "과거와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산지 활용도가 높아졌다. 사회적인 인식도 화장이 80%에 이르는데, 이처럼 사회적 변화가 급변함에도 사회적 인식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보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사회적 인식 변화는 인정하나 그 정도가 관습법을 없앨 정도에 이르렀는지는 의문이다. 분묘기지권을 폐기하려는 것이 국토이용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판결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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