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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대통령 방미 연기론에도…청와대 '일단 계획대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청와대가 결정할 일" 말 아껴

2015-06-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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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14~19일 미국 방문을 강행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중대 사안이 발생했으니 연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9일 방미 일정과 관련해 “특별한 말씀을 전해드릴 게 없다”며 계획이 바뀌지 않았음을 밝혔다. 전날 내놓은 답변과 같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방미 연기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이렇게 불안할 때, 특히 정부의 잘못으로 불안할 때 대통령께서는 방미를 취소하든 연기하든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시기에 대통령 부재에 대한 국민 불안감은 커질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도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한미 현안이 꼭 미국을 바로 가야할 정도로 시급하지는 않다”며 “메르스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방미 일정을 연기하고 민심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상치 않은 ‘메르스 여론’을 느끼고 있는 새누리당 쪽의 기류는 미묘하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문제는 청와대나 외교부에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청와대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의견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나는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웬만하면 ‘일정대로 해야 한다’고 말할 법한 여당 대표가 이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의미심장했다. 사실상 ‘연기가 바람직하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전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대통령 방미를 연기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하 의원 외에 방미 연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여당 의원은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는 9일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으로서는 현장 상황을 더 검토하면서 대책을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국에 간다 해도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가져올 만한 게 특별히 없다는 점이 청와대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견고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북한에 대해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기로 했다’는 정도의 성명만 내놓을 경우 ‘이 와중에 다 아는 얘기를 하려고 미국에 갔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과는 고사하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제)의 한반도 배치에 협조해 달라는 압박 ▲ 미·중의 남중국해 갈등에서 미국의 입장을 옹호해 달라는 요청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 한·미·일 3각 협력체제 구축에 동참하라는 요구 등 외교적인 짐만 받아올 가능성도 있다.
 
메르스 국면에서 정부와 사실상 대척점에 섰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럽 출장을 취소하며 대통령과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청와대로선 부담이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메르스를 이유로 6~11일 독일·중국 방문을 포기했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방미를 강행하고 그 기간 동안 감염의 불길이 확산된다면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결국 청와대는 메르스 상황과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방미를 하되 정상회담 외의 일정은 취소해 조기 귀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수습되지 않은 작년 5월 원자로 설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해 비판을 받았다. 올해 세월호 1주기 당일에는 중남미 순방을 떠났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한창인 가운데 이뤄진 중남미 순방 기간 동안 이완구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앞줄 가운데) 등이 참석하는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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