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허지은

"DB손보, 휴대폰 위치정보 제출 않을시 보험금 안준다 해"

암보험금 못받은 가입자들 DB손보 본사 앞 시위

2024-01-03 06:00

조회수 : 6,349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암 보험금을 청구한 고객들이 보험사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실제 입원했는지를 확인하겠다며 통신사 기지국을 통한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제출하라고 한 것인데요. 보험 가입자들은 "지나친 개인정보 강요"라며 반발했습니다. 
 
'DB손해보험 실손의료비 부지급 피해자 모임(디피모)'은 2일 서울 강남구 DB손보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습니다. DB손보에 가입한 암환자들이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디피모는 "보험사가 기지국 정보 제출을 강요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함으로써 시간을 끄는 것은 금융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의료기록·카드내역 제출에도 위치정보 고집
 
기지국 위치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를 받은 A씨는 DB손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인데요. 2021년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항암 수술을 받은 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지방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일당을 받기 위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손해사정인으로부터 뜻밖의 요구를 받았습니다.
 
A씨는 "보험금을 계속 받다가 마지막 달이 돼서는 '한 달치 기지국 정보를 달라'고 했다"며 "면회오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몇 차례 외출을 한 적은 있으나 정상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고 밝히자 나머지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가 DB손해보험으로부터 받지 못한 보험금은 650만원 가량입니다.
 
B씨 역시 유사한 상황인데요. B씨는 보험사가 입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모두 제출했음에도 기지국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B씨는 "의사가 치료 지시를 내린 기록물과 카드명세서까지 보험사에 제출했는데도 위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못 주겠다고 했다"며 "위치 정보를 제출하면 입원 사실 외에 굳이 보험사에 알릴 필요가 없는 개인 사생활 정보가 모두 드러나는데 왜 가입자가 보험사에 이것을 알려야 하냐"고 주장했습니다.
 
'DB손해보험 실손의료비 부지급 피해자 모임'은 2일 서울 강남구 DB손보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가입자들이 보험사 위치정보 요구가 부당하다는 내용이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지은 기자)
 
"개인 민감정보 요구 과도"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사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입증 차원에서 위치 정보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법률 전문가는 보험사기 의심 사례라 하더라도 과도한 정보 요구라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세영 변호사는 "보험사가 개인 위치정보까지 받아 보험금 심사를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례라고 한다면 경찰에 진정을 내 수사 기관에서 적법하게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위치정보를 사생활 비밀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거나 동의의 범위를 넘어 수집한 경우에 대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법령만 놓고 보면 아무리 보험사가 위치정보를 요구하더라도 개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정보는 보호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보험사가 위치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 보험금 지급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어 가입자들이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디피모 관계자는 "암환자가 치료받는 병원에 찾아와 통신사 기지국 정보, 통화목록을 요구하는 일은 상황만 조금 다를 뿐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보험사의 횡포"라고 말했습니다.
 
DB손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확인해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추가적인 절차를 진행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보험사기 규모 증가…선량한 가입자 피해
 
보험사기가 증가하고 있어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결국 피해는 선량한 보험 가입자가 떠안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818억원에 달합니다. 2021년 9434억 원 것에 비하면 1년만에 1384억원(14.7%) 증가한 것입니다. 같은 기간 보험사기 적발 인원 역시 10만2679명으로 전년 대비 5050명 늘었습니다.
 
보험사기 유형별로 적발 현황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경우는 사고내용 조작으로, 규모는 전년 대비 61.8% 늘어난 6681억원이었습니다. 이어 허위사고는 17.7% 증가한 1914억원, 고의사고는 14.4% 증가한 1553억원 규모였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가 계속 증가하고 또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어 보험금 누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해 자체적으로 보험사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험사기 적발을 위한 노력이 선의의 보험소비자 피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정당한 의사 권유에 따른 치료를 받고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청구하는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도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며 "보험금은 약관대로 지급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일 DB손해보험 본사 앞에서 '실손의료비 부지급 피해자 모임'이 보험금 부지급 규탄 집회를 개최하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 허지은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