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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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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우리에게도 '반대 채널' 제도가 있다면…

2023-12-12 06:00

조회수 :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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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미국 국무부의 중동권 외교관들이 이스라엘 정책에 반론을 제기하는 ‘반대 전문(dissent cable)’을 제출하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들과 면담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을 지지해야 하고, 이스라엘이 민간 시설을 공격할 경우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공식 문건을 제출한 건데, 친이스라엘-친네타냐후 기조인 조 바이든 정부에 반기를 든 겁니다.
 
‘반대 전문’은 미국에서도 국무부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국무부 정책기획국이 관리하는 ‘반대 채널(dissent channel)’을 ‘반대 전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국무장관을 비롯한 최고위층에 전달하고 30~60일 안으로 답변해야 합니다. '아니 되옵니다'를 제도화한 것으로,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인 1971년에 처음 도입했는데, 미국을 둘로 쪼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외교관들의 불만을 달래는 방편이었습니다.
 
1971년 당시 방글라데시를 지배하던 파키스탄이 다카에서 인종학살 수준의 대량학살을 자행했음에도 닉슨 행정부가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고려해 묵인하자 아처 블러드 현지 영사가 이를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보스니아 내전과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도 ‘반대 전문’이 제출됐고, 2016년에도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정책 반대 전문에 51명이 서명했습니다. 특히 2017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등 이슬람권 7개국에 대해 90일간 이민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자, 전체 외교관 7600명 중 1000명이 넘게 ‘반대 전문’에 서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71년 블러드 영사의 경우,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격노해 본부로 소환했는데 그 뒤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한 채 은퇴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이후 반대 전문이 지속된 것을 보면 ‘불이익 금지’라는 원칙이 어느 정도는 지켜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전 참패를 보면서, 우리 외교부에도 '반대 채널' 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2025년 엑스포를 오사카가 개최하는데, 같은 동북아권인 부산 유치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 엑스포 경제효과가 크지 않다는 일선 외교관들의 '반대 전문'이 제출됐다면 어땠을까요? 올해 2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3자 변제안은 여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안입니다. 실제로 외교부 내부에서는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어공은 물론 늘공까지 건드리는, 특히 이 정부처럼 모든 분야에서 전 정부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먼지가 나올 때까지' 하급자들까지 탈탈 털어대는 상황에서는 꿈같은 이야기겠지만요.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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