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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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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이범종의 미리 크리스마스)나는 열매다

2023-12-04 11:53

조회수 :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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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2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지 않았다면, 오늘 저와 함께 장식하는 건 어떠세요? 준비물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물, 그리고 캐럴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준비물. 이케아 트리와 장식품. 친구들에게 보낼 카드와 선물도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제가 장식할 트리는 이케아 빈테르핀트(VINTERFINT) 트리입니다. 복층 오피스텔에 사는 이점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에 가장 큰 210㎝ 제품을 마련했죠. 물론 트리 장식(오너먼트)도 같은 계열 제품입니다. 저처럼 큰 트리를 샀다면 안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조립하기 전 미리 꼭대기 별을 달아둡시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선수처럼 키 큰 사람은 예외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야 트리 장식 할 맛이 난다. 10년 넘게 만들어온 재생목록이면 더더욱. (사진=이범종 기자)
 
트리 장식을 예쁘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가장 큰 방울을 가장 긴 가지에 매다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긴 가지에는 더 작은 방울을 달며 균형을 찾아갑니다.
 
나무에는 앞뒷면이 따로 없기 때문에, 주위를 돌면서 방울 다는 곳을 고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10년이 넘게 만들어온 크리스마스 재생목록도 기운을 북돋습니다. 들리는 노래가 신나는 곡에서 경건한 곡으로 이어지면, 생각도 점점 깊어집니다.
 
꼭대기 별은 미리 달아두는 게 좋다. 나중에 의자 놓고 꽂으려다 사고 날 수 있다. 최홍만 선수 등 큰 사람은 예외다. (사진=이범종 기자)
 
상자가 비어갈수록 가지엔 방울이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마치 그동안 마음에 쌓인 고통을 양분 삼아, 한겨울 가지에 열매가 열리는 듯합니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 내 실수를 크게 비웃고는 외려 날 노려보던 두 여자, 못된 그들에게 맞서지 않고 물러선 나, 트리 장식하는 손 모양이 혹시나 오해를 살까 봐 몇 번이고 사진을 다시 찍는 나···.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손에 잡히는 방울로 치환해, 나(트리)를 꾸미는 데 쓰는 겁니다. 부산에서 만난 못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예로 들면, '그들보다 나은 나'를 한 방울 다는 거죠.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스스로 망치게 돼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 나는 나를 가꾸면 됩니다.
 
큰 가지에 큰 방울을 먼저 달며 균형을 잡아가는 게 중요하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좀 더 개성 있고 수가 적은 방울도 달아야 심심하지 않습니다. 이제 여섯 개들이 방울 상자를 열 차례입니다. 이 방울은 맨 처음 장식한 금방울과 크기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먼저 달았던 방울을 떼 위치를 고민하는 재미가 있어요.
 
여섯 개들이 방울엔 특별한 무늬가 있어서 고민하는 즐거움을 준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 과정이 즐거운 이유는, 캐럴을 들으며 마음속에 정리해 온 올해의 이야기 순서를 바꾸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방울 하나를 달 때마다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때는 좋았는데', '이 순간은 불쾌했어', '휴, 그 건은 무사히 넘겼지' 같은 생각도 하는데요.
 
여섯 개들이 장식 상자를 여는 순간, 먼저 떠올린 이야기 사이에 특별한 기억이 더해지는 겁니다. 올해의 이야기에 플롯이 새로 배치되는 셈이죠.
 
플라스틱 장식품을 만지다가 매끈한 종이 장식을 만질때의 즐거움이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아래에서 찍으면 정면에서 촬영할 때보다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 (사진=이범종 기자)
 
더 희귀한 재료가 남았어요. 세 개들이 고깔 장식을 걸 땐, 여기에 담고 싶은 소중한 기억이 떠오르게 된답니다. 가을 가족여행이라든지, 게임쇼 지스타 취재라든지요. 물론 꼭 올해 있던 일일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나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행복했던 일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을 직접 트리에 거는 방법도 있어요.
 
꼭대기 별 가까운 곳에 하나 더. 추억을 담아 거는 기분이 든다. (사진=이범종 기자)
 
장식물을 다 걸었더니, 트리 밑이 비었네요. 남은 순서가 있습니다. '나에게 받은 선물 놓기'입니다. 트리 아래에 쌓은 물건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가졌는지 돌아보는 의식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사진에 있는 물건 모두가 올해에 산 물건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자가 제일 큰 플레이스테이션(PS)5는 작년에 산 겁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올해도 저는 절약과 거리가 멀었군요. 이 사진엔 없는데, 복층에 69만9000원짜리 릴리트('디아블로 IV'의 주연) 석상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둔 상자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가진 사람인지 생각한다. (사진=이범종 기자)
 
크리스마스트리 완성.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사진=이범종 기자)
 
복층 계단에서 찍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을 더 살까, 전구를 마련할까 고민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트리 꾸미기가 끝나면, 방 한구석에 작은 마을도 만듭니다. 트리는 몇 해 전 허쉬스 초콜릿에서 나온 한정판 미니 트리이고, 집과 사람, 순록 도자기 장식은 이케아 제품(빈테르핀트)입니다. 오른쪽 수염 난 인형도요.
 
날 밝은 크리스마스 마을. (사진=이범종 기자)
 
크리스마스 마을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찾아왔다. (사진=이범종 기자)
 
뭔가 허전하다고요? 네. 아직 큰 트리엔 전구 장식이 없습니다. 이걸 새로 사야 할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조명을 켜면 황홀하겠지만, '나'라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이 트리가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을 직접 걸어보자. (사진=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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