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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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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이범종의 미리 크리스마스)염세주의자 산타의 시뻘건 치유법

2023-11-08 17:35

조회수 :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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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영화의 계절, 겨울이 왔습니다. 요즘 디즈니플러스에서 넷플릭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OTT에서 크리스마스 영화가 '재생' 버튼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오늘 추천할 연말 영화는 가슴을 따뜻하고 신나게 두들겨 패는 성인용 '나홀로 집에'라 할 수 있는 '바이올런트 나잇'입니다. 오늘도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점, 참고해 주세요.
 
토미 비르톨라 감독의 2022년작 '바이올런트 나잇' 포스터. (사진=애플TV+)
 
여기는 미국의 어느 바. 산타 옷을 입은 두 중년 남성이 '업계 사람'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다 돈을 위해 일 하는 것"이라면서도, 한마디 자부심을 담아 덧붙입니다.
 
"애들 행복한 표정이 좋아서죠 뭐. 저는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맞은 편 산타가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지만, 이내 속사포처럼 한탄을 내뱉습니다.
 
"그래요. 그 행복한 표정. 2초 후에 사라지죠. 포장을 뜯자마자 그 다음 선물을 바라고 그 다음 멋진 걸 바라고. 이 세상이 그렇습니다. 요즘 애들이 어떤 줄 알아요? 그냥 꼬마 중독자들이에요. 같잖은 놈들이죠. 생떼 부리고, 산타는 믿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고 조르고, 낭비하고···."
 
그러다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이 남자가 결심합니다. "올해까지만 할까봐요. 마지막 크리스마스군."
 
이윽고 이 남자는 출구 대신 옥상 문을 열고 나서는데요. 술집 주인이 이 정신 나간 남자를 잡으러 쫓아갑니다. 하지만 하늘을 휘젓는 썰매를 보고 놀라며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릅니다.
 
기쁨도 잠시. 그 머리 위에 산타의 토사물이 쏟아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대충 분위기가 어떤지 감이 오시죠?
 
이번엔 카메라가 산타가 아닌 어느 가족을 비추는데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속 모습이에요. 이혼한 부모가 아이와 함께 같은 차에 올라타고 부모 집으로 향합니다. 어제 '나홀로 집에'를 본 소녀 트루디 라이트스톤은 엄마 린다, 아빠 제이슨과 함께 부자 할머니 거트루드 라이트스톤 부인 댁에서 보낼 크리스마스 생각에 들떴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할머니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큰 결심을 한 모양인데요. 선물 때문일까요, 아니면 거기 얹은 카드 때문일까요? 좀 더 지켜봅시다.
 
라이트스톤 여사 댁에 도착한 트루디 가족은 아빠 제이슨을 견제하는 누나와 그의 철없는 아들 버트, 할머니에게 투자 받으려고 누나를 사랑하는 척 하는 액션 배우를 마주합니다.
 
짧고 강렬한 인사가 끝난 뒤, 침실로 간 트루디는 산타가 이 집을 찾아올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올해 아빠가 자신을 쇼핑몰 산타에게 데려가지 않아서인데요. 아빠는 급히 창고에서 장난감 무전기를 찾아 선물하며, 이걸로 산타와 대화할 수 있지만, 산타는 바빠서 듣기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문 밖에서 트루디가 무전기에 말하는 소원을 엿듣는데요. 트루디는 다른 건 필요 없고, 가족이 다시 같이 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쉽게 해결하긴 어려운 문제죠.
 
그런데 진짜 시급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집 지하 금고를 노린 하인과 일부 경호원이 본색을 드러내고 집안을 점령한 겁니다.
 
그동안 산타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는 받고 싶은 선물 목록에 '현금'을 적어놓은 카드를 보며 익숙한 실망감을 재확인하고 있었죠. 염세주의자가 된 산타는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며, 이 썩어빠진 세상에 대한 경멸이 가득 담긴 소변을 시원하게 뿌립니다. 아기 머리맡엔 선물을 두고, 그 옆 소파에서 자는 아빠의 협탁엔 석탄을 올려두는데요. 그 자리에 있던 캔맥주 묶음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죠.
 
그리고 혼잣말로 이 보람찬(?) 일을 한 마디로 정의내립니다. "올해도 염병할 크리스마스군(another fucking christmas)."
 
산타는 어느 집에서 마침내 맘에 드는 수제 쿠키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쑤셔넣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이 집 구석엔 안마 의자도 있어요. 노곤한 몸을 잠시 녹이고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요. 여기는 트루디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는 라이트스톤 부인 저택입니다.
 
산타가 썰매에서 무기 '스컬 크러셔'를 꺼내들고 있다.(사진=다음 영화)
 
산타는 어서 이 난리를 피하고 선물 배달을 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를 발견한 강도와 싸우다 의도치 않게 죽이는데, 강도가 천장에 드르륵 쏜 총 소리에 놀란 순록들이 하늘로 도망가서 썰매도 못 타게 됐습니다.
 
산타는 살금살금 이 집을 떠나려 하지만, 창문 안에서 두려움에 떠는 트루디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수제 쿠키를 만들어주고, 산타를 믿는 착한 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산타와 강도들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랑과 치유의 상징인 산타의 싸움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양말에 당구공을 넣어 휘두르질 않나, 눈에다 트리 별을 박은 뒤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 해치우기도 하죠.
 
이후 트루디와 산타는 서로의 무전을 듣는 데 성공하며 상황을 공유하는데요. 트루디 아빠 제이슨이 산타에게 말 할 수 있다며 쥐어준 장난감 무전기가, 산타가 강도에게서 뺏은 무전 신호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CCTV로 산타의 존재를 알게 된 강도들이 그의 정체를 말하라며 아빠 제이슨을 고문합니다. 이에 트루디는 그가 진짜 산타라고 확언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산타는 단지 부모가 자식을 기쁘게 해주려고 지어낸 존재라고 소리칩니다. 딸을 지키려고 한 말이겠지만, 충격과 실망에 휩싸인 트루디는 다락방에 숨어듭니다. 트루디는 산타와 무전을 주고 받으며, 이 할아버지가 자신이 과거에 받은 선물과 소원을 모두 아는 진짜 산타임을 확인합니다. 
 
강도 두목이 산타를 심문하고 있다. (사진=다음 영화)
 
산타는 트루디를 구하러 가다 강도들에게 붙잡혀 심문 당하는데요. 강도들 이름과 어린 시절 받은 선물, 과거의 잘못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두목은 저항감에 휩싸여 선물 보따리를 벽난로에 던져버리죠. 트루디는 환풍구로 가짜 눈을 뿌려 관심을 끌었고, 의자에 묶인 산타는 바닥에 굴러 굴뚝 위로 탈출합니다. 오른 검지로 코를 만져서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했죠? 산타의 싸움 실력 말이예요. 둘의 무전 대화에서 산타가 사람을 잘 죽이는 이유가 드러나는데, 그는 먼 옛날 '피의 니코먼드'로 불린 전사이자 침략자, 도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소녀와 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창고에서 찾아낸 긴 망치(슬레지해머)를 붕붕 휘두릅니다. 침략자 시절, 어쩌면 좋은 일에 쓸 수 있었던 무기 '스컬 크러셔'를 떠올리면서요.
 
이후 트루디는 나홀로집에의 '호호호 작전' 뺨치는 잔혹 함정으로 강도에 맞섭니다. 하지만 나홀로집에의 주인공 케빈도 마지막엔 도둑들에게 잡힌 뒤 어른의 도움을 받잖아요. 트루디를 구하는 어른 역할은 산타가 맡았습니다. 트루디가 눈과 귀를 막고 징글벨을 부르는 동안, 강도는 죄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릅니다.
 
그 사이 다른 강도들이 지하 금고를 열었지만, 훔치려던 3억 달러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예전에 이 돈을 라이트스톤가에 줬는데요. 기름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중동의 모든 악질에게 뿌릴 뇌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장의 안개에 사라졌다던 돈이 이 집 지하에 묻혀있던 겁니다. 트루디의 할머니 라이트스톤 부인이 벌인 일이었죠.
 
강도는 이 돈의 행방을 물으며 트루디 엄마 린다에게 총을 겨눴고, 아빠 제이슨은 자신이 돈을 다 훔쳤다고 밝혔습니다. 어머니 그늘에서 전전긍긍하다 이혼까지 하게 된 인생을 고치기 위해, 멀리 떠나 가족이 재결합하려는 계획이었던거죠. 어머니 선물에 얹은 카드에는 이 고백이 적혀있었고, 라이트스톤 부인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강도들이 돈 가방을 전동썰매에 싣고 떠나는데요. 산타는 망치와 스케이트날로 강도 무리를 해치우고 두목을 추격합니다. 둘은 결국 일대일로 맞붙습니다. 그러다 두목은 산타가 떨어뜨린 나쁜아이 목록에서 자기 이름을 읽습니다.
 
'나쁜 아이 지미 마르티네스' '절친 살인,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함, 도둑, 살인자, 크리스마스를 혐오'
 
지미는 자기 유년기의 불행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이번 기회에 크리스마스를 끝장내기로 하죠. 하지만 산타는 크리스마스 마법으로 기지를 발휘해 지미의 몸통과 사지를 분리합니다. 벽난로 앞에서 지미를 끌어안고 오른 검지로 코를 만졌거든요. 산타가 마법 가루 모양으로 지붕에 오르는 동안 지미는···. 상상이 되시죠?
 
하지만 살아남은 강도 하나가 산타를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곧이어 도착한 트루디네 가족은 산타를 살릴 온기를 찾습니다. 트루디 아빠 제이슨이 산타 옆 작은 불에 50만 달러를 던져 태웁니다. 트루디도, 엄마도, 아빠도, 사촌도, 할머니도, 심지어 고모도 산타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산타가 다시 숨을 쉽니다.
 
기쁨도 잠시. 이제 선물 배달 문제가 남았습니다. 때 맞춰 순록들이 돌아오는데요. 산타가 "죽든 말든 버리고 가더니 다 끝나니까 돌아오냐"고 화를 냅니다. "네 녀석들은 푹 삶아서 요정들한테 줘야 해!"
 
트루디가 돌아온 썰매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다음 영화)
 
하지만 썰매에 비상용 선물 꾸러미가 있는 걸 보고 기특한 순록을 쓰다듬습니다. 게다가 꾸러미 옆엔 카드 한 장과 익숙한 무언가가 놓여있었습니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당신의 아내가'
 
스컬 크러셔를 든 산타는 트루디와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고마워."
"뭐가요?"
 
"날 믿어 준 거. 크리스마스가 중요하다고 일깨워 준 거. 나도 아직… 중요하다고 말이야. 네가 '호호호'를 돌려준 거야."
 
염세주의자가 된 산타클로스를 다시 웃게 만든 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시기를 일종의 통과 지점으로 바라보곤 하는데요. 이제 여기서 멈추지 말고 산타가 무엇을 상징하며 그 상징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마음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하는 연말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산타는 동떨어진 믿음의 대상이 아닌,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니까요.
 
  • 이범종

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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