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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31화)주희 성리학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한국사회 이념적 폅협성과 다름 용인 못하는 주자학

2023-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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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 성리학으로 넘어가기에 앞서서 조선성리학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희 성리학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주희 성리학은 공자가 창안했다고 말해지는 원시유학과는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전혀 다른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양마셜” 이렇게 얘기하죠. 두 가지는 “서로 (전혀) 다른 물건이다”라는 얘기죠.
 
주희 성리학과 공자의 원시유교, 공자가 춘추전국시대에 창안했던 유교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원시 유교”라고 호칭할 것입니다. 원시 유교와 송나라 때 그로부터 공자로부터 1500년이 지나서 송나라 때의 주희가 창안한 성리학은 “양마셜”!입니다. 전혀 서로 다른 물건이다! 이렇게 얘기해야 된다는 거죠.
 
주희는 자신이 창안한 성리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자의 유교문헌에 주석을 단 것이지, 공자의 원래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희의 주석에 따라서 공자의 문헌을 읽어서는 공자의 참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주자학의 창시자인 북송의 주희. 사진=필자 제공
 
청나라 때 《논어(論語)》에 대해서 가장 뛰어난, 가장 풍부한 주석서라고 할 수 있는  《논어집석(論語集釋)》을 쓴 정수덕(程樹德) 선생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주희는 사서에 풀이를 달면서 ‘갈 지(之)’ 자, ‘이 차(此)’ 자 등의 글자를 만나면 모두 ‘이치[리(理)]’라는 글자로써 그 실질을 채웠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대학 본문[경(經)]에 대해서 주희가 전(傳)을 보충한 뒤 이미 송나라 유학자들의 책으로 바뀌어서 공씨의 책이 아니게 되었으니, 그 말에 실제로 개탄함이 있었다“ 고 썼습니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공씨(孔氏)의 책’이라는 것은 (공자의) 원시유교의 모습 원모(原貌)를  간직했다는 얘기죠. 주씨의 송나라의 책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는 주희가 그것을 주석했다 라기보다는 개작(改作)했다고 얘기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논어》에서 그려지는 공자의 모습은 고전을 중시하고, 사람들이 자기 분수에 따라서 자기 맡은 바 질서를 지켜나간다면,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소박한 인문학자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주희가 주석한 것에 따르면 공자는 해괴한 사람이 돼버립니다. 주희는 공자가 수제자 안회(顔回)가 죽었을 때, 안회의 죽음에 대해서  옆 사람(제자)이 “스승님 지금 너무 지나치게 통곡을 하십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비통해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주희는 뭐라고 주석을 했냐면은, “공자는 자기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애도한 것이다[悼道無傳]” 라고 주석을 달았어요. “도도무전(悼道無傳)”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안회의 죽음에 대해 공자가 통곡한 일화는 <선진(先進)> 편(11-9)에 나옵니다. 이 대목에 대해 주희는, “悼道無傳”(공자가 자기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애도한 것)이라고 억지 주석을 달았습니다. 공자가, 자기 가르침이 전수되지 않을까봐 안회를 애도한 것이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수제자니까 같이 먹고 살고, 같이 살 부비고, 같이 살았던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인간적인 슬픔을 표현한 것이지요. 
 
공자는 도가와 불학에 대해 전투적인 공격성을 드러낸 이데올로기적인 주희 성리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소박한 인문주의자였습니다.사진=필자 제공
 
주희에 따라서 공자를 읽어서는 공자의 참모습을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논어》에 대한 주석은 현재 한국에서 500종 정도로 추정되는데 500종의 99%가 (아직도 여전히) 주희 주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김용옥씨의 《논어》 번역도 주희의 주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걸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注)》는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에 나오는 참고서였습니다. 그래서 주희의 ‘사서집주(四書集注)’는, 조선에서 인쇄한 주희의 ‘사서집주‘는 오자(誤字)와 오탈자(誤脫字)가 한 글자도 없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오탈자가 있으면 안 되죠.
 
주희(朱熹)의 《사서집주(四書集注)》. 주희는 《논어》를 주석하면서 공자의 본래 진면모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자신의 ‘성리학(性理學)‘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가문헌을 이용했다. 주희의 성리학은 조선의 유학자들의 조선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조선 후기의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고금주’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주(古注)가 무엇이냐, 주희 이전에 위진시대에 활동했던 하안(何晏), 황간(皇侃), 형병(刑柄) 등의 (학자들이) 《논어》에 주석을 붙인 것입니다. 그들의 주석은 어땠는지, 주희 이전에는 논어에 대해서 어떻게 주석을 했는지를 밝힌 것이죠. ‘금주(今注)’라는 것은 주희의 주를 얘기합니다. 이 두 가지를 대비해본 것입니다. 정약용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고주(古注)란, 주희 이전에 위진시대에 활동했던 하안(何晏), 황간(皇侃), 형병(刑柄) 등의 《논어》 주석을 말하며, 금주(今注)’란 주희의 주석을 말합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맹목적으로 주희의 주석을 따른다면, 정약용 선생으로부터도 200년 전에 활동했던 정약용 선생으로부터도 후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주희의 주석을 맹종해서는 안되고, 주희를 넘어서야지 그래야지 우리의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산 정약용. 사진=필자 제공
 
제가 조선성리학으로 넘어가기 앞서서 주희성리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번 시간에는 말씀드렸습니다. 주희성리학은, 논어 시대, 공자 시대, 논어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살았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원시유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주희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주석한 것이 주희의 주석이고, 그것에 따라서 유학을 파악해서는 원래 공자의 참된 모습을 우리가 알 수가 없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논어》에는 ‘이단(異端)’에 대해서, 공자는 이단을 공격한 적도 없고, 이단을 위험시한 적도 없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오늘날에는 자기 가르침과 다른 것을 이단이라고 그러는데, ‘이단’이라는 단어가 《논어》에는 위정>편[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爲政> 2-16)]에 한 번 나옵니다. 딱 한 번 나오는데, 그 단어는, ‘양단(兩端. 두 가지 실마리)’이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두 갈래, 양 갈래, ‘양단’이라는 뜻으로 쓰였지, 오늘날 말하는, 자기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을 공격하기 위한 말로 쓰이지 않았죠.
 
주희 이전에 위진시대에 활동했던 하안(何晏), 황간(皇侃), 형병(刑柄) 등의 《논어》 주석과 주희의 주석을 비교한 정약용의 《논어 고금주》. 사진=필자 제공
 
그것에 대해서 주희는 뭐라고 주석을 달았냐면, “도가(道家)와 불가(佛家), 이것이 이단이다”라고 주석을 달았죠. 이것은 틀린 주석입니다. 주희가 자기 자신의 중화중심주의적인 시각 때문에 이런 틀린 주석을 단 것이죠. 청나라 때 초횡이라는 사람의 《논어보소(論語補疎)》에서는 ‘이단(異端)’을 “서로 다른 부류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別殊類使不相害, 序異端使不相悖。”(《論語補疎》)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해치지 못하도록 하고, 서로 다른 실마리를 순서를 바로 잡아서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주석에 따르면, ‘이단’이란 ‘양단(兩端)’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이단에 대한 공격과 배척은 전국시기에 와서 맹자(孟子) 때부터 시작됐다 라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오늘 드린 말씀의 요점은 주희성리학을 따라서 유학을 이해해서는 유학의 본래 모습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고 성리학적 왜곡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름을 용인 못하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폅협성과 주자학의 악영향이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주희성리학 때문에 왜곡된 시각을 딸딸 외우고 자기 신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기 위해서 주희 성리학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주희의 주석을 맹종하는 세태가 안타까워서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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