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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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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영화 그 이상의 경험 '마블 스파이더맨'

2023-10-23 18:31

조회수 : 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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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영화보다 영화 같은 게임'의 시대입니다. 영화 속을 돌아다니고 싶었던 개발자·게이머의 염원이 2020년대 첨단 기술을 만난 덕분이죠.
 
그리고 우리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새로 나왔습니다. 이달 20일 인섬니악이 개발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5 독점작 '마블 스파이더맨 2'가 메타크리틱 평점 91점으로 또 한 번 평단의 찬사를 받았는데요. 이는 2018년 PS4판으로 발매된 1편과 PS5에서 실행 가능한 리마스터판(2022년)의 평점 87점을 훌쩍 뛰어넘는 평가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오랜만에(?) 인도에 내려와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을 걷고 있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실제 뉴욕 날아다니는 재미
 
그런데 이 게임을 기다려온 저는 시작 버튼 누르기를 미루고 있습니다. 뒤늦게 1편 리마스터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리마스터는 이전 세대인 PS4에 맞춰 나온 게임의 그래픽 수준을 현 세대에 맞춰 끌어올렸다는 뜻입니다.
 
그간 저는 온라인상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는데 '마블 스파이더맨' 안 하는 건 직무 유기"라는 글을 읽곤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지, 어째서 1편이 2000만장 넘게 팔렸는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관객이 바라는 건 몇 분 간 감상할 수 있는 화려한 액션입니다. 특히 마천루에 거미줄 쏘며 뉴욕 한복판을 날아 다니는 '웹 스윙'과 각종 추격전 등이 백미지요.
 
그런데 마블 스파이더맨을 실행하면 이런 장면을 수없이, 그것도 더 멋지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웹 스윙 할 때마다 PS5 게임패드인 '듀얼센스' 스피커에서 거미줄 쏘는 소리가 들리며 특유의 진동이 나옵니다. 마치 나의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죠. 게임 속 뉴욕시는 실제 지도와 건물을 그대로 재현해, 현실감이 높습니다. 뉴욕의 명소 사진을 찍어 경험치를 쌓는 미니 게임이 있을 정도죠. 특히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 본 뉴욕의 야경이 아름다운데요. 밤에 찾은 타임스 스퀘어도 장관입니다.
 
밤이 되면 고층 빌딩에 올라 뉴욕시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직접 웹 스윙 하며 도심지 곳곳을 날아다닐 때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공공기관과 상호명 등을 넣기 위해 일일이 계약을 맺어 실제 뉴욕시를 구현하도록 애썼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와 독립된 이 게임만의 서사와 게임성도 일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파이더맨으로 활동중인 피터 파커가 메리 제인 왓슨(MJ)와 이미 헤어진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피터는 MJ에게 "우리 친구 하자"는 식으로 다시 잘 해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죠. 그리고 MJ는 기존 영화보다 훨씬 주체적입니다. 피터 파커의 전 여친 역할이나 하는 조연에 머물지 않지요.
 
이야기의 특정 부분에 접어들면, 게이머는 열혈 기자인 MJ를 조작해 범죄 조직의 사건 현장에 잠입 후 위험한 취재를 하게 됩니다. 주로 현장에서 만난 스파이더맨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을, 게이머가 과거 시점의 MJ를 조작하며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중반부에 들어서면 '파트너'가 되기로 한 피터와 협력해 기차역에서 테러를 막기도 하지요. MJ는 기자와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파트너를 원하지만, 피터는 그 이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MJ가 기차역을 장악한 테러단체 눈을 피해, 피터에게 신호(듀얼센스의 □ 키 누름)을 보내면, 천장에 매달려 있던 피터가 아래로 내려와 '퍼지 제압'을 한다. 상대를 거미줄로 감아 천장에 매다는 공격이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둘의 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돌입하고, 거미줄 타고 거꾸로 매달린 피터가 MJ와 문자 주고 받으며 전전긍긍하는 연출도 재밌습니다.
 
뉴욕의 일상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이 크고 작은 일을 해결 할 때면, 소셜 미디어에 시민들이 관련 내용을 적곤 합니다. '데일리 뷰글' 편집장 시절부터 스파이더맨을 괴롭혀온 언론인 J. 조나 제임슨의 라디오 생방송도 들리는데요. 사사건건 억지 논리로 스파이더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대사가 살아있는 뉴욕의 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뉴욕의 생명력은 역시 거리의 시민들이 채우죠. 가끔 웹 스윙하다 떨어지거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스파이더맨 사진을 찍고 이런 저런 말을 붙입니다. 듀얼센스의 세모(△) 키를 눌러 행인과 하이파이브 할 때도 있죠. 가끔 이런 식으로 소통한 시민들이 소셜 미디어에 소감을 남기기도 한답니다.
 
헤어진 연인에서 다시 친구, 그리고 파트너로 발전한 피터와 MJ는 '미스터 네거티브' 사건 이후 다시 관계가 소원해진다. MJ가 "생각을 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피터가 걱정하는 모습.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세계관을 반영하는 곁가지도 흥미롭습니다. 기본 이야기 외에 각종 부가 임무와 미니 게임 등으로 스파이더맨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데요. 피터 파커가 다니고 있는 옥타비우스 연구소에서 여러 기계 장치를 고치고 연구하며, 방어력과 공격력을 높일 장치를 발명하는 식입니다.
 
이 밖에 오스코프사의 숨겨진 연구소를 통해 뉴욕의 환경 오염 문제를 연구·해결하며 능력치도 끌어올리기도 하죠.
 
이런 요소들이 세계관을 자연스레 반영하기 때문에, 한 그루 나무의 기둥 옆에 뻗은 가지에서 맛난 과일을 수확한 기분이 듭니다.
 
다채로운 의상을 입고 나만의 영화를 찍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 속 피터 파커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과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 자체 스파이더맨 슈트도 세련됐습니다.
 
MJ가 '파트너'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 하자, 피터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영화 오마주 등 맛깔난 서사
 
그리고 이 게임 제작사 인섬니악은 스파이더맨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요 장면에서 기존 영화를 오마주하는 방식에서 특히 극명하게 드러나는데요. 피터가 전철에서 '미스터 네거티브'를 물리치고, 제어장치가 망가진 전차를 멈추려 양쪽에 거미줄을 쏘지만 실패하는 장면을 한번 볼까요. 이때 피터는 "저번엔 잘 됐는데"라고 하며, 앞에 높인 레일을 들어올리는 식으로 전철을 세웁니다.
 
이건 2004년작 영화 '스파이더맨 2'에서 닥터 옥토퍼스가 망가뜨린 전철을 피터가 세우는 데 성공한 장면을 오마주한 겁니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 세계관의 큰 틀을 따릅니다. 그래서 불안과 호기심이 마구 샘솟습니다. 게임 속에선 피터가 옥타비우스 박사 스타트업의 유일한 직원인데, 극을 진행할수록 옥타비우스 박사가 결국 기계 팔로 범죄를 저지르는 옥토퍼스 박사가 될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천장에 매달린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위 아래로 움직이며 적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실행 화면)
 
무엇보다 이 게임은 그 자체로 '친절한 이웃'입니다. 부족한 순발력에 대한 좌절 없이 이야기를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스토리 모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드로 게임을 하면, 스파이더맨이 기본 줄거리를 위한 전투 중 아무리 맞아도 일정 수치 아래로 체력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2편은 규모가 훨씬 방대합니다. 이제는 피터 파커와 흑인 청년 마일즈 모랄레스, 이렇게 두 명의 스파이더맨으로 브루클린, 퀸즈, 코니 아일랜드 등 확장된 뉴욕을 탐험할 수 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피터와 MJ 관계가 제일 궁금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또 다시 배보다 큰 배꼽, 대형 텔레비전 구매를 고민했습니다. 뉴욕이 확장됐으면 TV도 확장돼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논리죠 뭐 :)
 
  • 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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