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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29화)김시습, 통곡의 철학자 매월당

현실의 민중의 고통 대응한 감수성의 천재

2023-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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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여러 천재가 있었지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우리가 오늘날에도 주목할 만한 천재입니다. 그는 말은 더디게 배웠지만 생후 8개월 만에 글의 뜻을 알았다고 하며, 3살에 유모가 맷돌로 콩을 가는 모습을 보고, "비도 안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 누런 구름이 풀풀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집현전 학사 최치운(1390~1440)이 그의 재주를 보고 놀라서, 《논어(論語)》<학이(學而)>편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따서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김시습은 5세 때 이미 《중용》, 《대학》을 익혀 주변으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날 세종시절 좌의정을 지낸 허조(許稠, 1369~1440)가 찾아와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老)’자를 넣어 시를 하나 지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이에 김시습은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은 것입니다(老木開花心不老)”라고 시를 지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라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라 안에 다섯 살짜리 신동이 있다는 소문은 당시 조선의 임금이던 세종대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조선의 대표적 천재 매월당 김시습. 사진=필자 제공
 
인재를 매우 귀하게 여기던 세종대왕은 조용히 승지(承旨, 조선 국왕의 비서관)를 시켜 이 신동에 대한 소문이 진짜인지 조용히 시험을 해보도록 하였습니다. 승지는 김시습을 궁으로 불러, 이렇게 운을 띄웠습니다. “동자의 학문은 마치 백학이 하늘 끝에서 춤을 추는 것 같구나[童子之學 白鶴舞靑空之末]”. 그랬더니, 김시습은 “어진 임금님의 덕은 마치 황룡이 푸른 바다를 뒤엎는 듯합니다[成王之德 黃龍飜碧海之中]”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크게 칭찬을 하며 비단 50필을 선물로 하사하면서 세종은 신동에게 한 문제를 더 시험문제로 냈습니다. 상으로 받은 비단 50필을 어른 도움을 받지 말고, 스스로 가져가라고 한 것입니다. 김시습은 그 비단의 끝을 서로 묶어 엮은 뒤, 자신의 허리춤에 묶고 끌고 갔습니다. 이렇게 하면 50필의 비단이 무게가 분산되어 꼬마라 할지라도 끌고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에서는, 천재 김시습이 유교의 경전에만 통달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 발상까지 낼 수 있었던 발상의 천재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김시습을 시험해본 세종은 무관이었던 김시습의 아버지 김일성(金日省)을 불러, “이 아이의 학문이 무르익으면 나라에서 크게 쓰일 인재가 될 것이므로 잘 키우라”고 당부합니다. 김시습이 세종을 만난 게 그가 다섯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 이후 이름 대신 ‘오세(五歲)’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래서 김시습이 머문 적이 있는 설악산의 암자 이름이 ‘오세암(五歲庵)’이 된 것입니다.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수양대군)가 일으킨 계유정난은 김시습의 일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진=필자 제공
 
김시습의 일생은 수양대군(세조, 세종의 둘째 아들)이 단종으로부터의 왕위 찬탈[계유정난(癸酉靖難)]과 결정적인 관계가 맺혀있습니다.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은 외아들 단종이 세 살 때 서거했습니다. 문종이 서거하자, 단종은 세 살 때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섭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단종의 삼촌이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세종 때의 집현전 충신들과 자신의 동생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의 친속들을 모두 살해한 뒤, 수양대군 자신은 영의정 겸 섭정에 오르고, 수양대군 일파인 신숙주, 한명회, 권람 등은 선양(禪讓, 왕위를 덕망 있는 사람에게 넘긴다는 뜻)의 형식으로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도록 강제합니다.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과거시험을 위해 독서하고 있던 김시습은 서기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했다는 소문을 듣자, 그것이 ‘선양’이라는 미사려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삼촌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음을 바로 깨닫고, 문을 걸어 잠그고 사흘 동안 대성통곡을 하고, 보던 책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들뿐이라며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 머리를 깎고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의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습니다. 
 
노량진 한상변에 오늘날 ‘사육신 역사공원’으로 단정하게 정리된 사육신 묘역은 김시습이 처형 당한 사육신의 주검들을 수습하여 처음 가매장해준 곳입니다. 사진=필자 제공
 
세조 2년(서기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이 밀고로 사전 발각되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 유응부 등 여섯 사람[사육신(死六臣)]이 광화문 군기감 잎에서 거열형(車裂刑, 사지를 네 대의 수레에 묶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하여 죄인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잔혹한 형벌)으로 처형당하자, 당시 승려이던 김시습은 이들의 주검을 수습해서 노량진[오늘날 ‘사육신 사당’이 있는 곳]에 묻어주었습니다. 김시습은 무슨 용기로 지금 집권자 세조에게 반역자로 처형당한 이들의 주검을 수습해주려고 나섰을까요?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내가 홀몸으로 걸어 오르기에도 숨 가쁘고 힘든 노량진 한강변의 노들 언덕길을 김시습은 여섯 사육신의 주검을 한구씩 지어 오르느라 여섯 번 왕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내려갔다가 한번더 올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을 충성이니 충(忠)이니 따위의 봉건적 윤리로 포장하는 것은 다 헛소리입니다. 김시습을 움직인 것은 그 마음속의 대장부로서의 떳떳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반역자들의 주검을 감히 수습해주었다고 똑같은 반역자라고 여겨도 상관없다, 잡아가든 처형하든 내 마음속의 떳떳함을 눈꼽만큼도 손상시킬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 그 떳떳함이 벽면서생인 그가 사육신의 주검들을 지고 노량진 언덕을 거푸 오르내리게 추동한 힘이었을 것입니다. 
 
김시습의 본관인 강릉 김시습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시대에 간행된《매월당집》. 사진=필자 제공
 
이후 김시습은 세조 정권의 벼슬길에 일체 나아가지 않고, 세조를 도와 권력을 찬탈한 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꾸짖으면서 한평생을 살아갔습니다. 세조의 권력 찬탈을 도운 수양대군의 오른팔이자 브레인인 세도가 한명회(1415~1487)가 압구정동의 한강변에 별장을 짓고 살면서 지은 시에 대해 김시습은 통렬하게 비꼬았습니다. 현명회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젊어서는 사직을 부축하고, 늙어서는 자연 속에 누었노라”[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 이 시에서 김시습은 두 글자만 바꿨습니다. 청춘망사직, 백수오강호[靑春亡社稷. 白首汚江湖] 김시습이 바꾼 시의 내용은, “젊어서는 사직을 망쳐먹고, 늙어서는 자연을 더럽혔다”라는 뜻이 되버립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화담 서경덕과 더불어, 송명리학을 이학(理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학(氣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송명리학자 가운데는 횡거(橫渠) 장재(張載, 1020~1077)와 같은 기철학자도 있었지만, 주희 성리학에서 주류는 ‘이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리학 도입 초기에 김시습과 서경덕이라는 탁월한 기(氣) 철학자가 잇따라 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적어도 이들은 주희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색과 성찰을 통해 송명리학을 수용했으며, 자신들의 사유를 통해 이를 새로운 사유로 빚어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장에 교조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성찰과 탐색의 과정을 거친 것은 최치원, 김가기, 김운경 등 풍류도 성향을 지녔던 초기 유학자들의 기질을 계승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김시습의 본관인 강릉 김시습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시습의 친필 시. 사진=필자 제공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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