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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김동률, 대중음악 경계 허무는 '마에스트로'

악기가 주인공되기도…재즈·탱고에 뮤지컬 연출까지

2023-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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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신비롭고 거대한 저 녹색의 막이 걷히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클라이막스 같은 음(音)의 파도가 밀려오지 않을까.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무대 전면의 스케일 큰 풍경부터 묘한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암전 속 투명한 썰물처럼 밀려오는 'The Concert'(2008·5집 'Monologue' 수록곡)의 현악 파트, "불이 꺼지고"부터 "천천히 검은 막이 걷혀질 때"로 이어지는 점층적 가사에 맞춰 탁 켜지는 조명과 올라가는 천막, 단정한 정장 차림에 트레이드마크인 뿔테와 넉넉한 미소로 가을 미풍처럼 부드럽게 뿜어내는 고동색 절창….
 
오랜 세월 정밀한 세공사처럼 설계한 공연은 시작부터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더군요. 가수 김동률(49)이 지난 주말 마친 대규모 시리즈 공연 ‘멜로디(Melody)’는 치밀한 완벽주의로 대중음악의 장벽을 허문 대담한 무대였습니다. 아이유나 임영웅 같은 대형 팬덤을 위시한 가수, 혹은 K팝 그룹이나 세계적인 팝스타들만 가능하다는 이 아레나급 무대에 닿았습니다. 지난달 7일부터 총 6회에 걸쳐 연 공연에는 회당 1만5000명, 총 9만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습니다. 
 
지난달 7일부터 총 6회에 걸쳐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서 열린 김동률 콘서트 '멜로디'. 연 공연에는 회당 1만5000명, 총 9만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습니다. 사진=뮤직팜
 
내년 데뷔 30주년을 앞둔 김동률은 한국 대중음악의 크루너(crooner·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남자 가수)이자, 치밀하고 세련된 편곡으로 입지를 굳힌 싱어송라이터입니다. 1993년 전람회(김동률·서동욱)로 MBC 대학가요제 ‘꿈속에서’의 대상 데뷔. 이후 카니발(김동률·이적), 베란다 프로젝트(김동률·이상순)와 발라드·재즈·국악·탱고 등 장르의 벽을 허문 솔로 활동. 오케스트라와 빅밴드 편성, 재즈적인 코드 진행, 뮤지컬 같은 스케일 큰 무대는 그의 고유 인장과도 같습니다.
 
김동률은 무대를 넓게 썼습니다. 20여 명의 관현악단과 밴드 멤버를 모두 무대로 올렸습니다.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잡고 노래했지만(피아노로 연주한 두 곡 '사랑한다 말해도'·'이방인' 제외), 명백히 '마에스트로'였습니다.
 
"팬데믹 시기 어느날 산책 도중 대중적인 곡들을 돌아봤다"고 스스로 공언했듯, 이번에는 ‘기억의 습작’,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취중 진담’ 같은 30년 된 선율들을 생명력 있는 반주로 되살려 내는 데 오롯이 집중했습니다. 대체로 원곡의 원형은 유지하되 미세한 악기들의 확장과 조절을 통해 라이브의 묘미를 살려냈습니다. 사랑, 그 가슴절절함을 담은 장면 포착의 노랫말들은 세월이 흘러 인화한 필름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싱어송라이터 김동률. 사진=뮤직팜
 
"자신보다도 더 집요한 연주자들"이라 한 김동률의 설명처럼, 곡에 따라 악기가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테면 '아이처럼(2008·5집 'Monologue' 수록곡)'에서는 근음을 1분 남짓 짚어가던 콘트라베이스가 피아노가 뿜어내는 재즈 선율, 와이어 브러쉬의 드럼과 결합하다, 후반 라틴 탱고로 변주되는 음의 흐름이 인상적. '재즈병'을 앓았다는 미국 버클리음대 재학시절 쓴 '구애가(2001·3집 '귀향' 수록곡)에서는 여러 대의 기타와 피아노, 관악기와 콘트라베이스가 국악 선율을 재즈로 오가는 가운데, 뮤티드 트럼펫(트럼펫 앞부분을 막아 내는 소리)의 솔로 독주도 압권이었습니다.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를 무대로 올린 곡 '연극'(2018·EP '답장')부터는 대중음악가의 한계까지 밀어부치는 음악가라는 걸 더욱 증명해갔습니다. 인터미션 때 고장지 밴드가 깜짝 펼쳐보인 김원준의 '쇼'(김동률 작사 작곡) 인스트루멘탈 버전은 원곡과 달리 김동률의 음악 세계를 보다 진하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디스코와 펑키부터 레트로 팝, 클래식, 록을 오가는 신곡 '황금가면' 무대는 댄서들까지 올라 공연과 닮은 곡의 장대한 골조와 양식미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합창단을 방불케 하는, 코러스 사운드가 김동률의 목소리와 겹쳐 블록버스터 뮤지컬을 연상케 하더군요.
 
지난달 7일부터 총 6회에 걸쳐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서 열린 김동률 콘서트 '멜로디'. 연 공연에는 회당 1만5000명, 총 9만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습니다. 사진=뮤직팜
 
"컴퓨터 한대로만 뚝딱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물론 음악에 접근성이 좋아진 장점도 있지만, 점점 어쿠스틱으로만 된 음악을 듣기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분명 제작비가 많이들고 가성비가 떨어지고 올드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저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숨결로 빚어낸 소리가 아직도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그런 어쿠스틱 음악을 계속할 것이고 공연에서 보여줄 생각입니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 주도로 블루스의 깊은 색을 우려낸 ‘취중진담’을 들려준 뒤에는 “23세에 발표한 짱짱한 원곡과 다른 버전이었을 것"이라며 "이제는 옛날 곡들을 어떻게 넘어설까 하는 생각은 포기했고, 제 나이대에 맞는 노래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 말해도'·'이방인'에서는 피아노 앞에 앉아 단출한 타건과 고요한 목소리로 시작해 후주 오케스트라까지 스케일을 높여가며 휘몰아치는 편곡 미학 또한 돋보였습니다.
 
마지막 곡 '기억의 습작'(전람회)과 앙코르로 이어진 '내 마음은', '멜로디'…, 김동률의 음악은 마음 속 무채색 풍경을 탁 잡아 오케스트라 선율들로 펼쳐내는 음의 수평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항해와도 같은 것이기에.
 
"다음 달 겨울에 어울릴 신곡을 낼 거에요. 어디선가 싹이 틔고 꽃이 필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김동률 '멜로디' 포스터. 사진=뮤직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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