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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엘르가든, 노랑에서 빨강으로

15년 만에 단독 내한 공연…"음악은 국경, 성별, 세대를 넘어서는 것"

2023-10-0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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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여전히 하늘 높이 폭죽처럼 터지는 가위 차기, 이것은 피자맨의 노랑 젊음.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 웃통을 벗어 제끼고 생기를 뻗어내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의 20여년 전 음반 'Pepperoni Quattro'의 컬러와 곡 제목이 번개처럼 스쳐간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한국 말로 "우리는 '아저씨'가 됐지만, (음악을 향한)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는 이 밴드의 합주를 보는 것은 녹슬지 않는 시대의 펑크팝을 맞닥뜨리는 일이기에.
 
지난 10년 밴드 공백기, 15년 만의 내한 단독 무대, 2달 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이후 후끈 달아오른 한국 음악 팬들과의 재차 만남. 캡 모자를 쓰고 스파게티 면들을 입으로 우겨넣는(2005년 발표작 'Riot On The Grill' 앨범 표지 그림) 틴에이지 감성이 어느 구간에서 또 어떻게 튀어나올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다보니 26곡이 후루룩 흘러가더군요. 
 
엘르가든 2005년 발표작 'Riot On The Grill' 앨범 표지 그림. 사진=벅스뮤직
 
이날 이곳에서 열린 일본 록 밴드 엘르가든의 무대를 보며 다시금 느꼈습니다. 펑크(Punk)란 시대를 거스르는 자유와 낭만, 저항의 정신이라는 것.
 
엘르가든은 2000년대 초반 일본 펑크 록 신의 최전성기를 주도한 팀이고, 완벽한 영어 발음 덕에 일본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 펑크 록 진출까지 가능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팀으로 평가됩니다. 'Make A Wish',  'Marry Me' 같은 대표곡들은 당시 국내의 유명 CF에도 삽입돼 멜로디만 들어도 알아챌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였습니다. 
 
2008년에도 한국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참여한 바 있지만 그 해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작년 정규 6집 '디 엔드 오브 예스터데이(The End Of Yesterday)'을 발매하며 '제 2막'을 열어젖혔습니다. 리듬과 템포가 빨랐던 과거작들보다 다소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LA의 여유로운 스튜디오에서 매만졌다고 합니다. 
 
1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록 밴드 엘르가든 멤버들. 사진=TSUKASA MIYOSHI
 
이번 공연에선 초창기 곡 'Supernova'를 터뜨릴 때부터, 마지막쯤 들려준 'Goodbye Los Angeles'까지, 소년에서 어른이 된 시간의 변천을 음악 안에 수평선처럼 걸어놓더군요.
 
이날 저녁 7시 반 경, 해골 문양의 상징 로고가 내려올 때부터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관객들이 함성을 터뜨렸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엘르가든의 음악은 푸르른 날의 매미 울음과도 같은 짙녹색입니다. 
 
머리를 악기 쪽으로 쏟아내며 심벌과 하이햇을 난타하는 타카하시 히로타카(드럼), 묵묵히 강처럼 굽이치는 리듬들을 만들어내는 타카다 유이치(베이스), 아르페지오 연주로 윤슬 같은 반짝이는 멜로디를 그려가는 우부카타 신이치(기타), 그리고 여기에 가을 하늘처럼 쾌청한 목소리를 호소미 타케시(보컬·기타)가 얹혀낼 때, 그 짙녹의 생기를 봤습니다. 
 
"음악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음악은 국경, 성별, 세대를 넘어서기에!" 
 
펜타포트 대기실에서 만났을 당시 "2006년 한국에 처음왔을 때, 우연히 TV 보다가 저희 노래('Make A Wish',  'Marry Me')가 CF송으로 나오는 걸 보고 깜짝놀랐다"는 이들은 이제 한국 관객들과 호흡하는 법을 압니다.
 
엘르가든 15년 만의 내한 공연 무대 뒤 현장.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예 한국말로 적어온 대본들을 읽어내려가는가 하면, 관객들이 들어올린 핸드폰 불빛들을 보고 "천국 같았다(Feels like heaven)"고도 했습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치만 중요한 건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신념 만은 계속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중요한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죠. 나중에 크리스마스 때 한국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네요. (웃음)"
 
세월이 흐른 자신을 그대로 투영한 음악을 한다는 것. 이제는 쨍한 노랑보다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삼합이 만들어내는 석양빛에 가까운 신곡('Goodbye Los Angeles')이더라도. 폭발보다는 관조하는, 그런 새로운 시간은 다시 누군가가 느낄 젊음이기에. 
 
공연장을 나오던 관중 무리에서 조용한 말이 들려옵니다. "그 신곡 있잖아.. 라이브로 들으니까 LA 그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 진짜 좋더라." 
 
1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록 밴드 엘르가든의 최근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 사진=TSUKASA MIYOSHI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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