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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여름날 초록 향기 같은 음악, 전기뱀장어

7년 만에 정규 3집 '동심원'…"초심이자 본질로 돌아간 음악"

2023-09-24 07:00

조회수 : 1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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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상상을 자극하는 것은 모니터 너머의 초록 들판, 풀 향기까지 진하게 풍겨올 것 같은 여름날의 어떤 서정,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나 보던 헤드폰 낀 소년처럼 눈부신.
 
"우리가 같이 숲길을 걸으면서 자연친화적인 느낌으로 얘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곡의 사운드나 구성이나 군더더기 없고 담백한 '유기농스러운 앨범'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최근 만난 밴드 전기뱀장어가 말했습니다. 2집 'Fluke(2016)' 이후 7년 만에 발표한 정규 3집 '동심원'에 관한 이야기.
 
전기뱀장어는 청춘의 아릿함을 이율배반적인 청량한 인디록 사운드로 그려온 음악가입니다. 무더위로 죽을 것 같지만서도 수박을 한 입에 넣고 수영장에 풍덩 뛰어드는 여름날의 서정처럼. 2014년 정규 1집 '최고의 연애'로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최우수 모던 록 노래', '올해의 신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평단까지 사로 잡았습니다.
 
1인 체제로 바꾸고 7년 만에 정규 3집 음반 '동심원'을 낸 밴드 전기뱀장어. 사진=유어썸머
 
정규 3집 타이틀이자 동명의 곡 '동심원'은 맑은 마음에 관한 것. 간결한 화성, 노스탤지어풍 과거 회상에 관한 가사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넘어가며 '순환 작용'을 합니다. 마치 발끝에서 퍼져나가는 수면 위 동그란 원을 그려내는 풍경처럼. "좋은 추억과 기억의 힘이 앞으로의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그런 마음가짐이랄까요. 과거의 아름다웠던 맑았던 예뻤던 추억과 기억이 앞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작업 기간이 7년까지 걸리게 된 것은 청춘의 패기만으로는 생계형 밴드의 지속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함께 하던 밴드 구성원들이 모두 떠나가면서, 황인경(보컬, 기타) 1인 체제로 다시 마음을 다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명 남은 밴드도 밴드라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일단 이어가기로 선택을 했습니다. 저는 공연과 음반 수익 만으로 사는 전업 음악가인데요. 식료품과 전세대출이자, 고양이 사료값을 포함해 100만원 안팎으로도 안빈낙도하며 살자는 주의거든요. 하하. 이번 음반에서는 더욱 초심이자 본질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인 체제로 바꾸고 7년 만에 정규 3집 음반 '동심원'을 낸 밴드 전기뱀장어. 사진=유어썸머
 
흔들리는 청춘이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의 꿈은 동심원처럼 퍼져갈 수 있는 것. 이번 음반의 다른 수록곡 '자연사 박물관'은 제목부터 독특합니다. 박물관에 박제돼 있던 삼엽충과 공룡 화석이 튀어나올 것처럼 짠짠 거리는 리프와 리듬이 밝게 통통 튀어댑니다. 그는 "기존의 전기뱀장어를 쭉 이어온 멤버인 저로서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 스타일"이라며 "실제 서대문구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본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 비현실적 화석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봤다"고 했습니다.
 
"고생대 인류 화석 모형처럼 언젠가 우리의 일상도 훗날 미래의 인류에 의해 전시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거든요. 전시장 저 편에 전시된 나를 누가 기억해주고 누가 바라보게 될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살짝 슬퍼져서요."
 
전기뱀장어 3집 '동심원'. 사진=유어썸머
 
대체로 전기뱀장어는 1-4-5도 식의 간결한 코드를 뼈대로 삼아 듣기 편안한 느낌의 음악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사 박물관'처럼 드럼 리듬을 아래 깔고 베이스를 쌓아가며, 기타 두대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서로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식의 밴드 연주를 진행하기도 하고, '장마' 같은 곡에서는 텐션이 들어간 코드를 활용해 블루지 풍의 느낌을 낼 때도 있습니다. '어둠의 저편(feat. 박여름)'의 안개 자욱한 것 같은 노이즈 사운드는 흡사 산울림이나, 동물원 시절의 에코페이드 감성 같기도 합니다. 대충 녹음한 것 같은 까끌까끌한 사운드, 그러나 맑고 고운 선율들.
 
"까끌까끌하고 노이지한 반주와 작게 읊조리는 노래는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더 작고 소중한 걸 더 강조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곡('어둠의 저편')은 깊은 숲속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잃기 쉽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마음을 잘 품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에요."
 
1인 체제로 바꾸고 7년 만에 정규 3집 음반 '동심원'을 낸 밴드 전기뱀장어. 사진=유어썸머
 
이번 음반이 그는 "동심원의 '심(心)'이 마음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점에 기인해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 원'을 상기했다"며 "사람들은 저마다 개개의 마음을 가졌더라도 결국 교감으로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한다. 제 10개의 곡들이 동심원의 물결이 퍼지듯 사람들 저마다에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 됐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스피츠, 쿠루리, 미스터칠드런 같은 내츄럴한 일본 록 사운드를 즐겨들었어요. 고막 옆에서 때리는 듯한 사운드보다는, 연주자가 살짝 저 앞쪽에서 나를 위해서 연주를 해주는 듯한 사운드. 해안도로 드라이브 길에 들으시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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