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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무산된 ’한국판 우드스톡’…"전문성과 기획력 부족"

전문가들 "이름값 기대지 말고 새 어젠다 끌어내야"

2023-09-21 00:00

조회수 : 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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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0월 초 열릴 예정이던 '한국판 우드스톡'이 연기와 장소 변경 거듭하다 결국 취소됐습니다. 업계에선 "해외 상표권에만 기댄 채 기획사의 전문성과 기획력이 부족하면 이런 사태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애초 이번 축제는 지난 7월 경기 포천 한탄강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0월 1~3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로 변경됐었습니다. 당시 주최사인 공연기획사 에스지씨(SGC)엔터테인먼트는 날짜·장소 변경에 대해 장마철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당초 공지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출연이 무산되고 국내 가수들로 뒤늦게 채우면서 '우드스톡'을 잇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습니다. 음악 관계자와 예매 관객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되다 결국 구체적인 사유를 전하는 대신 주최 측 사정으로 취소한다고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발표했습니다.
 
올해 1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드스톡 한국 개최 간담회. 사진=SGC엔터테인먼트
 
우드스톡은 히피 문화 절정 시절이던 1969년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특히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가 이펙터로 폭격기 같은 소리를 내며 미국의 베트남전을 비판한 무대는 세계 대중음악 공연계의 역사로 회자됩니다.
 
그 해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 페스티벌에는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자유와 반전주의, 다양성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이후 1994년과 1999년, 2009년 각각 개최 25주년과 30주년, 40주년을 기념한 후속 페스티벌이 열렸으나 미국 내에서도 상징성만 존재할 뿐, 지속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공연기획사 SGC엔터테인먼트가 1월 초 기자 간담회를 열어 발표한 대로, 이번 '한국판 우드스톡'은 미국이 아닌 지역에서 개최되는 역사상 첫 사례로 업계 주목을 끌었습니다.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포천 한탄강 일대에서 열어 자유와 평화라는 우드스톡의 정신을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이어가려는 취지도 엿보였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1960년대는 비틀스, 밥 딜런, 어리사 프랭클린이 활동한 대중음악의 전성기"라며 "아티스트 외에 그 당시를 상징하는 지적재산(IP)을 뽑으라면 우드스톡"이라고 페스티벌의 의의를 짚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기획사의 전문성과 기획력 부족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합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페스티벌 발표를 하게 되면, 통상 예산과 간판출연진(헤드라이너) 발표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조차 없었다. 우드스톡이라는 IP에만 기댄 채 움직였던 기획자, 지자체의 미숙한 의사결정이 이 같은 사태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1969년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처음 열렸던 우드스톡 페스티벌, 당시 40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사진=뉴시스·AP
 
우드스톡의 취소 사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0년 우드스탁코리아가 '더 우드스톡 뮤직 앤드 아트 페어(Woodstock music and art fair 1969)' 창시자 중 한 명인 콘서트 연출가 아티 콘펠드를 앞세워 '한국판 우드스톡'을 열려한 바 있었으나, 상표권을 획득하지 못해 무산됐었습니다. 
 
이번에는 SGC엔터가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진행하려 했으나, 해외 아티스트들을 섭외하지 못하면서 끝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업계에선 끝내 취소됐음에도 전인권, 부활, 사랑과평화, 김경호, 김도균, 매써드, 안치환, 와비킹 같은 세대를 아우른 록 라인업을 끝까지 꾸려갔고 사전 출연 대금 지급까지 진행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평가합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대금 지급 사태를 보면 기획사가 음악과 페스티벌을 대하는 자체는 진심이었다고 본다. 다만, 우드스탁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워낙 유명한 것에 비해 대형 페스티벌 경험이 없는 주최 측의 운영 경험이 너무 미숙했던 점이 이번 사태를 키운 것 같다"고 봤습니다.
 
1969년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처음 열렸던 우드스톡 페스티벌, 당시 40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사진=뉴시스·AP
 
우드스탁이라는 상표권 자체가 세계 록 음악의 기념비적인 유산인 것은 맞지만, 이를 어떻게 재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작가 평론가는 "이름값만 갖고 움직이기보다는 실제로 비즈니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잘 고민해야 'UMF'나 '글로벌 게더링'(국내서도 열리는 세계적 EDM 축제) 같은 성공 사례들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파이어 페스티벌(해외의 역대급 사기 음악 페스티벌)' 사례처럼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2023년에 비틀스 내한공연을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김도헌 평론가는 "우드스톡은 히피무브먼트와 평화와 자유의 상징이었으나 마약과 방종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20세기 구시대록의 잔재'를 새로운 아젠다로 가져오거나,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결국 역사와 호흡하는 기획의 영역이다"며 "우드스톡은 그런 점이 부족했다"고 짚었습니다.
 
2019년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열린 우드스톡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관람객들. 사진=뉴시스·AP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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