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권익도

(리뷰)"50년 벽 넘어보세" 반세기 탈춤정신 계승한 '연세탈박'

2023-09-20 06:00

조회수 : 1,684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신 지신 지신아/ 연세탈박, 우리가 모였네/ 50년의 벽을 넘어 우리 모두 하나 되어/ 모든 시름 내려 놓고 신명 나게 놀아보세."
 
지난 16일 오후 3시 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에는 색동 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신구 세대들이 얼키고설켜 해학의 장을 한바탕 펼쳐냈습니다. 연세탈춤연구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연세탈박(연세탈춤연구회 동문들 모임)' 행사의 첫 포문을 성대하게 열어젖힌 길놀이.
 
젊은 풍물패들의 신명나는 가락을 내쏟자 노장들 입가에서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이 흘러나옵니다. 
 
태평소 울음이 길게 뻗어 나가면 쇠와 징, 장구와 북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전통 놀이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 농기를 들고 탈꾼들도 합세, 구석구석 돌며 뒤엉킵니다. 깃대를 휘날리며, 연세대 백양로(연세대 중앙로)를 수십 동문들이 쭉 따라가자 아이부터 학생과 어른, 외국인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들로 쳐다봤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 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색동 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신구 세대들이 얼키고설켜 고사를 지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550미터 거리의 백양로를 쭉 따라가다 대강당 앞에 멈춰선 단원들은 “큰 잔치 한 마당을 잘 치루게 해달라”며 천지신명을 향해 고사도 지냈습니다.
 
이날 두 차례 의식 행사에 이어 열린 본 공연은 동래학 춤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검정 갓에 흰 도포를 입은 노신사 22명이 군열을 이뤄 두 손과 발을 치켜들며 학의 풍채를 표현했습니다. 태평소, 징, 장구, 북이 신명나게 어우러지고 공연장 뒤편에는 연세대 무악산 안산을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이 내걸렸습니다.
 
"탈춤으로 자나간 청춘이 나름 순수하지 않았느냐." 탈춤의 기원이자 시작인 봉산 목중춤이 다음 순서로 오르자, 객석에선 "얼쑤"가 터져나왔습니다. 붉은색·검은색·푸른색·노란색의 오방옷을 입고 탈을 쓴 채 바닥을 구르면서 꺽는 춤이 장구 장단에 뒤섞이고 해학미가 연신 넘실댔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 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색동 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신구 세대들이 얼키고설켜 해학의 장을 한바탕 펼쳐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백규서 연세탈춤연구회 초대회장은 본 무대 시작에 앞서 "50주년 기념 공연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반백년 전 탈춤 정신을 이끌어온 20살 청년들이 이제 50대, 60대, 70대로 평균 환갑이 됐다"며 "청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삐걱대더라더 부족하더라도 잘 부탁드린다. 덩덩쿵덕 얼쑤" 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연세탈박은 1973년부터 시작된 대학가 탈춤 문화의 뿌리입니다. 60년대 후반 학번부터 10년대 학번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계승하며 이어져왔습니다. 
 
지난해 탈춤의 유네스코 등재 후 보편적 인류문화유산으로 범 세계적 가치를 갖게 돼, '탈춤 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돌아보는 분위기도 자리잡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날 무대에서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비롯해 탈춤의 탈장르화를 추구하는 여러 장르들이 뒤섞여 무대에 오르고 축제의 장이 됐습니다.
 
꽹과리, 징, 장구, 북, 대북 편성으로 여러 세대의 단원들이 뒤엉킨 사물놀이, 북채를 양손에 쥐고 장구치듯 두드리는 진도북놀이가 이어졌습니다. 5개의 소고와 함께, 북과 장구, 꽹과리를 들고 원을 그리는 연세대 현재 풍물패 단원들의 푸릇한 무대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울림의 '나어떡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흐르며 1980년대 '서울의 봄'을 민중 군무로 표현한 창작무는 탈춤의 현대적 변용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두 차례 의식 행사에 이어 열린 본 공연은 동래학 춤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마지막 대동놀이 때는 참석자 전원을 비롯해 관객들까지 무대에 올라 강강수월래를 함께 하는 진경이 펼쳐졌습니다. 무대와 객석, 전통과 현대가 난장을 이루는 장이 열린 셈입니다. 이날 무대에는 연세대 중앙풍물패 '떼', 서강대 탈패가 주축인 춤패 '마구잽이'가 함께 하며, 20대에서 70대까지 세대를 아울렀습니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왔다는 50대 관객 메리 킴 씨는 ”10대 때 한국에서 자랐지만 이후 미국에서 살다보니 이런 한국 전통 춤과 문화를 처음 보게 됐다“며 ”입구에서부터 ‘뭔 일이 일어났다’ 싶어 쭉 따라오며 길놀이를 보게 됐다. 연세대의 현대적인 건축 풍경에 한국의 전통 문화가 융합된 행사가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안내상으로 참여한 노년의 단원은 “1973년 연구회 창립 이후 반백년 세월 동안 탐구하고, 실천 방법을 고민하며 행동해온 ‘탈춤정신’을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며 "거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이후 후배들이 이어나갈 것이다. 연세탈박의 대가 끊기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짚었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 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50주년 연세탈박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 권익도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