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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엔니오 모리코네, 은하 탄생과 같은 신비로운 선율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모리코네 일대기 그린 다큐

202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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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카메라가 작업실을 비춥니다. 째깍대는 메트로놈과 서걱거리는 연필, 성채처럼 쌓여있는 음반과 책, 악보의 도열…. 피아노 한 대 없는 이 방에서 모리코네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합니다. 손가락으로 박자를 세고 소리를 입술로 그려가며. 한 두 마디의 선율이 악상을 점으로 찍고, 머릿 속 관현악이 별자리를 그리는 식. 그 주변인들의 증언처럼 세기를 지배한 영화 음악은 이렇게 새로운 은하의 탄생같이도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7 5일 개봉)’가 장기 상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모리코네는 시네마 천국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등의 아름다운 메인 테마곡들의 선율을 조각한 영화 음악의 거장. 영화 미션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도 이 음악에 삽입된 가브리엘 오보에를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입니다. 흔히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가 익숙한 곡의 가사를 뺀 원곡이 바로 가브리엘 오보에입니다.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7월 5일 개봉)’.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는 2020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정정했던 모리코네의 인터뷰를 토대로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한스 짐머 같은 영화계 별들을 비롯해 퀸시 존스, 펫 메스니 같은 현대 음악가들은 모리코네가 생의 물길을 바꿔 놓았다고 하나 같이 고백합니다. 영화의 연출은 맡은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시네마 천국을 비롯해 모리코네 명작들을 함께 한 영혼의 짝입니다.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어린 모리꼬네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중고 트럼펫을 건네 받습니다. “이걸로 생계를 꾸려가라.” 모리코네는 당시를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는 건 끔찍하게 굴욕적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귀를 편하게 하는 숭고한 선율로 대다수 음악 팬들은 그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 이면에 가려진 그의 음악 세계를 할애하는 데 큰 비중을 둡니다. 간단한 휘파람 소리 하나가 서부 영화(‘황야의 무법자’)를 요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원주민들의 의식으로부터 가브리엘 오보에악상을 떠올립니다. 빈 캔과 타자기, 욕조의 첨벙 소리로도 악보를 그려냈던 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존 케이지의 영향이었습니다. 1964년부터 활동했던 전위음악 그룹일 그루포(Il Gruppo)’ 소속으로 악기가 어디까지 실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7월 5일 개봉)’. 사진=영화사 진진
 
정통 클래식계와 영화계의 장벽에 부딪히는 순간들도 가감없이 드러납니다. 클래식계는 그를딴따라로 취급했고, 미국 아카데미에선 5번 연속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비운도 겪게 됩니다. 영화는 긴 호흡으로 2007년 평생공로상 수상을 시작으로 2016년 끝내 음악상을 타는 장면으로 완결시켜냅니다. 모리코네의 음악을 메탈리카, 팻 메스니 같은 현대의 대중음악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장면들을 그려내며, 200년 뒤 또 다른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결국 될 것이라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시계태엽 오렌지의 음악 작곡 요청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자신만이 그의 음악을 써야 한다는 질투심으로 성사되지 못한 비화나, ‘시네마 천국음악을 의뢰 받았을 때 모리코네가 처음엔 거절했던 일들까지 소개됩니다.
 
다만, 모리꼬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방대한 디스코그라피만 나열하는 것 같은 구성은 다소 지루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퀸을 소재로 한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인물들의 생전 일화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순수한 음악성 고민하는 거장의 고뇌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로 현재 음악계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음의 대성당' 같은 현악 선율들을 영화관의 큰 사운드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꼭 즐겨 보길 바랍니다.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7월 5일 개봉)’. 사진=영화사 진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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