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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시론)극한 기후 인프라

2023-08-30 06:00

조회수 :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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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알프스 지역을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14년전 처음 갔을 때와 4년전 다시 갔을 때, 그리고 이번에 3번째로 갔을 때 본 알프스 고산 지대의 만년설과 빙하의 규모가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14년전에는 어느 정도 형체가 유지되었던 빙하들이 이제는 대부분 녹아버려서 흔적만 남은 곳이 많았다. 60년전 만들어진 오스트리아의 유명 빙하 전망대의 경우, 만들어졌을 때에는 빙하 바로 위에 지어져서 관람객들은 바로 걸어서 빙하 위로 갈 수 있었다. 이제는 빙하가 녹아 없어져, 전망대에서 150미터 수직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2km를 걸어 올라가야 조금 남은 빙하에 도달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관리자가 토로하길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기후 위기로 인해 과거 인프라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10년 이내 빙하와 만년설이 완전히 소멸하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빙하 전망대도 문을 닫고 기후위기 체험관으로 바꾸어야 할 판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여름 더위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수도 파리의 경우 주택들 다수가 100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라 에어컨을 설치하기가 어려웠다. 벽에 실외기를 달 수도 없고, 배관을 설치할 공간도 없으니 날이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없이 견디어야 한다.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급한 대로 이동식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지만,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이동식 에어컨의 급증은 다시 전력 공급 문제를 유발시켜 민생고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만약 100년전 도시 계획가들이 극한 더위가 일상화된 미래를 예상했다면 도시 인프라 구축시 반영했겠지만, 그러지 못한 대가를 후손들이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유럽에서는 이제야 신축 주택에 에어컨을 기본 옵션으로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수많은 기존 주택들을 개조하는 일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도시 도심지의 노후 주택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여름철에만 수십만 명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할 거라는 우울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서울 강남 한복판이 여름철 집중 호우로 하수가 역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역시 따져보면 극한 기후 인프라의 이슈이다. 도시 인프라 설계 기준으로 시간당 강수량 80mm를 처리 한계로 정했는데, 비가 더 많이 온다면 담당자들이 아무리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해도 하수가 역류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처리 용량보다 더 많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만약 처리 기준이 시간당 80mm가 아니라 800mm라면 하수 역류 문제는 없겠지만, 이 경우 과도한 시설 투자이므로 균형이 필요하다. 통상 과거 강수량 통계를 분석해서 1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수준(“100년 1번 빈도”)의 집중 호우를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인프라를 설계하는데, 만약 기후 자체가 변화해서 과거 통계의 유효성이 떨어지게 되면 문제가 된다. 미국의 경우 빈번해진 허리케인으로 폭풍 해일 피해가 급증하자 2011년 이후 해안가 인프라 설계 기준을 100년 1번 빈도에서 10000년 1번 빈도로 강화했다. 예를 들어 기존 기준에서는 폭풍 해일 방파제의 설계 높이가 6미터 였다면, 신기준에서는 9미터로 강화되는 셈이다.
 
우리 모두가 체감하듯 찌는 듯한 더위와 집중 호우, 한파와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강도도 점점 세지고 있다. 기상 이변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정부의 방재 노력이 강조되지만, 근본적으로 인프라를 정비하고 기준 자체를 강화하지 않으면 임시 방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알프스의 빙하가 사라지는 유럽이나 허리케인으로 수 많은 해안가 집들이 주기적으로 파손되는 미국에 비해 우리는 아직까지 극한 기후의 문제를 깊이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이래서는 신규 건설하는 인프라의 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인프라를 개보수 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극한 기후에 대응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예방 작업이므로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급해 보이는 일에 우선 순위를 뺏기기 쉽다.
 
인프라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십년간 구축한 것이므로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시설을 보완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해안가 침수를 막기 위해 전국 해안에 설치된 방파제들의 높이를 현재 대비 20% 높이려고 할 경우 수십 조원의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더운 날씨로 태풍의 위력이 강해지므로, 슈퍼 태풍으로 부산, 인천 등 해안가 도시들이 광범위하게 침수될 경우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체감하는 위험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극한 기후로 어떤 인프라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강해야 할 지 체계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신규 인프라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기존 통계의 한계를 벗어난 극한 상황을 상정해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극한 기후로 인한 더위, 추위, 호우, 가뭄이 발생할지 정확한 시일을 알 수는 없지만, 기후 위기 문제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명백한 위험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기에 더 미뤄서는 안 된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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