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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미중 패권전쟁, 힘든 선택의 시간이 왔다

아쉽지만 '전략적 모호성'의 수명은 다했다.

2021-03-1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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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격화되는 미국의 중국견제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첫 쿼드 정상회의를 열고 13일에는 워싱턴포스트(WP)에 공동 기고문을 발표했다.
 
특히 4개국 정상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탄력적이고 포용적인 인도-태평양'을 추진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의 해상 진출'을 봉쇄하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여기에 미국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은 취임 후 첫 해외순방으로 15~17일 일본을 방문하고 17~18일 한국을 방문한다. 곧이어 18~19일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즉 바이든 행정부는 동북아 지역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확인하고, 중국과의 본격적인 대결로 들어가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2. 중국의 입장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2일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한국 정부가 쿼드 가입을 놓고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해 '한국이 쿼드에 가입하면 중국과의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며 신중한 판단을 압박했다.
 
청샤오허 교수는 미 국무·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정부가 쿼드에 합류하길 설득하고 더 많은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 쿼드는 소규모의 반중 그룹"이라며 "쿼드 가입은 중국과 한국이 이제 막 회복한 전략적 상호 신뢰를 불가피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쿼드에 가입하면 상호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다. 이성적으로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면서 한국이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과거 한국이 미중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무너뜨린 것은 박근혜정부 시절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미국 사드배치'가 유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다소 거리를 뒀지만 박 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구공산주의 진영 정상들과 함께 참석하며 노골적인 친중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 박근혜정부는 미국의 한국 내 사드(THAAD) 배치에 합의해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중국은 '한한령' 등 경제보복으로 대응했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섰지만 한중은 예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3. '전략적 모호성'이란 무엇인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상대방도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하면서 일종의 전략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적으로는 한 국가가 첨예한 이슈에서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부담을 더는 행위를 일컫는다. 소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Policy)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한국에 '전략적 모호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자 혈맹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중 압박에 한국도 함께하길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편에 서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에 적극 협조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쿼드 가입의 경우 '긍정적인 검토' 상황을 유지하되 가입은 하지 말라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4. 수명을 다한 '전략적 모호성'
 
미중 갈등이 전면적으로, 또 급속도로 심화되면서 이젠 한국이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기존 중국 중심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됐고,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형태의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전체 수출의 3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경제 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라는 이름의 친미반중 경제 블록을 구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중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블록에서 배제될 수 있는 위험을 직면하게 됐다.
 
5. 한국의 선택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닥쳐올 것이다. 결국 정부가 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솔직히 상황을 설명하고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정부가 국민들의 흔들림 없는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그 어떤 결론이든 미중 양국에 충분히 내세울 수 있다. 반면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에서 흔들린다면 외부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민들이 신중히 생각하고 단호하게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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