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에서 언급된 배우 하영의 소신 발언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친일파 후손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한 담론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상처와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화두이자 끝없는 논쟁의 대상이다. 특히 연예인을 비롯한 대중 인물의 가계에 친일 행적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비난과 옹호의 목소리로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을 통해 전달된 화두는 우리가 연좌제의 굴레와 성숙한 역사 의식 사이에서 어떠한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연좌제에 대한 근본적인 경계이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연좌제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조상의 죄나 잘못을 이유로 그 후손에게 사회적·법적 불이익을 주거나 도덕적 비난을 퍼붓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후손은 자신이 태어날 가문이나 조상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사회적 활동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조상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그 후손 개인이 가진 삶 및 성과를 철저히 분리해서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비판을 경계하는 것과 역사를 잊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후손에게 직접적인 도덕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친일의 결과로 얻은 부당한 이익과 권력이 세대를 넘어 세습되고 유지되어 왔다면 이는 사회 정의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친일파 후손이 과거의 부당한 유산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빈곤과 사회적 소외 속에서 고통받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쓰라린 모순이다. 따라서 친일 반민족 행위로 축적된 재산의 환수나 역사적 진상 규명은 연좌제 차원의 처벌이 아니라, 부당이득을 사회에 반환하고 파괴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당연한 역사 청산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친일파 후손과 관련된 이슈를 마주할 때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비난이나 무분별한 마녀사냥을 자제하고, 성숙하고 냉철한 사회적 성찰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공인이 방송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관련 담론이 형성될 때, 대중은 단순한 흥밋거리나 자극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인 역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만약 과거의 유산과 관련이 있다면 겸허한 반성과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핵심은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올바른 청산이다. 조상의 과오를 인지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노력에 동참하는 후손에게는 연좌제의 잣대를 대지 않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조상의 부당한 행적을 정당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는 힘은 과거에 매몰되어 누군가를 단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한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더 정의롭고 공정한 미래를 만드는 데 있다. 방송에서 던져진 담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연좌제 지양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지혜롭게 조화시켜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