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는지 유심히 보게 됩니다. 오래된 굴뚝이 있던 건물이 헐리고 무인 세탁소나 카페가 들어서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사우나와 찜질방 프랜차이즈가 여전히 성업 중인 것을 생각하면, 사라지는 것은 '목욕' 자체가 아니라 동네 어귀에 있던 재래식 대중목욕탕이라는 특정한 공간인 셈입니다. 통계를 찾아보면 이 흐름은 감상적인 인상이 아니라 꽤 뚜렷한 수치로 확인됩니다.
줄어드는 숫자가 말해주는 것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전국 목욕장업 업소 수는 2000년 9950곳에서 2010년 8446곳, 2020년 6439곳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5668곳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서울만 놓고 보면 감소 폭이 더 두드러집니다. 1995년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 기준 영업 중인 목욕탕은 510곳으로, 30년 사이 71%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경남과 강원 같은 지방 통계도 다르지 않아서, 특정 지역의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숫자만 보면 이 업종의 하락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우나는 느는데 목욕탕은 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감소가 '목욕 문화의 소멸'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프랜차이즈형 찜질방과 스파, 무인 사우나 같은 새로운 형태의 시설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결국 사라지는 것은 낡은 건물에 보일러 하나로 온탕과 냉탕을 유지하던 소규모 자영업 형태의 목욕탕입니다. 기사들을 찾아보면 폐업하는 업주들이 공통으로 꼽는 이유는 고물가와 고유가로 인한 연료비 부담, 그리고 노후 시설을 고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목욕값을 1만원 가까이 올려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이어집니다. 서울의 한 목욕탕은 누적 적자가 4억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공간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제 생각에 이 현상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매출이나 유가보다 그 공간이 맡고 있던 역할입니다. 동네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의 등을 밀어주고 이웃끼리 안부를 묻던 세대 간, 이웃 간의 접점이었습니다. 대형 사우나나 스파가 그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접근성 면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시설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령층이나 형편이 넉넉지 않은 주민일수록 동네 목욕탕이 사라진 빈자리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상권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낡은 시설이 새로운 형태로 대체되는 것을 무조건 아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목욕탕처럼 오래도록 동네의 일부로 자리 잡았던 공간이 사라질 때는, 그 자리를 채울 무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대체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고령층이나 저소득 주민을 위한 공공 목욕 지원 방안이 지자체 차원에서 조금 더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 지나친 골목에 문 닫힌 목욕탕 간판이 있다면,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었을지 한번쯤 떠올려봐도 좋겠습니다.